착각은 자유입니다만..
3월 6일에 쓴 글입니다.
2004년 오늘 제주도에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산업도로(지금은 평화로라고 이름이 바뀌었다)에 눈이 쌓여 버스조차 다니지 못했다. 3월에 내린 눈으로는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한 그날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21주년 결혼기념일이다. 남편에게 점심에 맛있는 거 먹자고 했더니, 해장국?이라고 답한다. 오랜만에 둘이만 점심을 먹는 거었지만, 남편의 메뉴선택은 한결같이 주차하기 쉬운 곳이다.
처음부터 남편이 그랬던 건 아니다. 맛집이라면 한 시간 운전은 기본이었고(제주도에서 한 시간이란 한라산을 넘는다는 의미로 큰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좀처럼 하지 않는 행위다. ), 친구들하고 같이 있다고 하면, 뜬금없이 찾아와 계산하곤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남편을 흑기사라 불렀고, 덕분에 내 어깨는 언제나 올라가 있었다.
그랬던 남자가 결혼을 하자마자 갑자기 배터리가 닳은 로봇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기름칠을 해줘야 가까스로 마지못해 일어섰다. 어느 날 이해 못 한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잡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 는 것이다.
누구 맘대로? 내가 잡힌 게 아니라 당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아무리 크게 외쳐봐도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사람을 사랑한 게 죄라면 죄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서 싸우기보다 맞춰주는 길을 택했고, 그 후부터 남편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그게 그만 남편을 더욱더 요지부동하게 만들어 버렸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남자로.
말만 하면 후다닥 일어나서 커피 내리고,
물 떠다 주고,
과일 깎아준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남편으로,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는 남자로.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내가 만들었다.
"나무꾼과 선녀"에서 사슴은 나무꾼에게 아이 셋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선녀옷을 내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고 살던 선녀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자 그만 마음이 약해졌고, 선녀옷을 받아 든 선녀는 양팔에 두 아이를 안고 날아가 버렸다.
아이를 세 명 낳자 나무꾼이었던 남편은 날아갈 테면 날아가봐라는 식으로 날개옷을 꺼냈지만, 나에겐 이미 무용지물이었다. 애 셋을 안고 갈 방도가 없었다. 남편은 잡은 물고기라 미끼를 더 이상 안 준다고 했지만, 나는 잡힌 적이 없었다. 단지 힘이 없어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잡힌 물고기도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물동이에 물이 차면, 뛰어오를 만반의 준비를 하며 꼬리를 파닥거린다. 바다를 누려본 기억이 있는 물고기는 밖에 나가 숨 막혀 죽을 것을 모른다. 알지만 모른 척하고 있는지도.
나는 선녀도, 물고기도 아니면서
선녀인 척 애가 셋이어서 못 날아가요.
물고기인 척 잡혀서 헤엄 못 쳐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말이라는 것은 힘이 세서 입 밖에 나가는 순간 내가 뱉은 말이 나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나를 구속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렇다면 나를 풀어줄 사람도 나라는 결론이 나온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나인데, 나만 잘하면 세상에 나갈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일 파닥거린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척 연기도 해가면, 그런 나를 보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하고, 더 쥐어짜라고 재촉도 해가며 혼자 놀고 있다.
혼자 노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 우리 집에서 제일 작은 공간인 컴퓨터방에 틈만 나면 들어갔다. 평소에는 남편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인데, 오늘은 남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글쓰기 수업을 받는데 얼굴을 삐쭉 내밀면서 언제 끝나? 하고 물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자, 남편은 내가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쌀국숫집에 가자고 했다. 점심시간에 웨이팅이 많은 곳이다. 주차만큼이나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웬일인가 싶었지만, 말 바꾸기 전에 얼른 옷을 챙겨 입는데, 택배가 도착했다.
뭐냐고 물어도 대답 없는 남편님. 뭘 또 두 개나 샀냐고 투덜대며 박스를 열었는데, 내 옷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과 나의 커플 옷. ㅋㅋ 미끼 안 준다더니 울 서방님. 요즘 제대로 긴장하셨나 보다. 오랜만에 받은 선물에 입이 찢어졌다. 오빠, 나랑 커플로 입을 거야? 저리 가라. 안 갈 건데. ㅎㅎ
날은 여전히 춥고, 30분 밖에서 기다려서 먹은 쌀국수는 맛있었고, 요즘 글 쓴다고 안 놀아줬더니 조금 긴장하는 것 같은 남편의 깜짝 선물은 기분 좋고, 종일 헤헤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며 우린 또 싸웠다. 21년 차지만, 여전히 밀당 중이다. 병 주고 약주 고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2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상대의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어떤 말을 해야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팔지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조심하며 싸움을 피한다. 싸웠다 하면 둘 다 치명상을 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싸움을 걸어왔다. 잠깐 망설였다.
이 칼을 막고, 내 칼을 휘두를까? 말까?
잡은 물고기라 미끼를 안 준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기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짧은 순간 싸워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정확하게 나를 겨냥한 칼이 날아왔다.
살짝 피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마음이 아팠다. 역시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예쁜 카디건을 사줬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해줬다. 할 말이 없다. 싸울 명분도 없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다. 상대하지 않은 싸움에 진이 빠진 듯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커피를 건넸다. 받아 들었다. 싸움이 끝났다.
남편이 컴퓨터방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더니 나를 불렀다. 남편이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나의 무기를 왜 만지고 있는 걸까?
-인터넷 연결할 때 이걸로 해 봐.
줌수업이 자꾸 끊긴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했구나. 기특했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대답 없이 나간다. 완전한 나의 승리였다. 나는 잡힌 물고기가 아니었고, 남편은 미끼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냥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두 사람일 뿐이다. 가끔 티격태격하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21년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