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드르고모님

연극 속 무대장치

by 레마누

남편에게는 6명의 고모가 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결혼할 때 색이 다른 6벌의 한복을 해서 고모들에게 선물했다. 결혼식사진을 보면, 비슷하게 생긴 할머니 6명이 나란히 서 있다. 남편은 신기해하는 나에게 한 명씩 짚어가며 이름을 말해줬지만, 내 눈에는 그 사람이 그 사람같았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 셋을 불러 앉히더니 비장한 얼굴로 제사를 물려준다고 말씀하셨다. 아들 셋은 아무 말이 없었고, 제사 음식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얼떨결에 할머니 제사를 하게 됐다.


남편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얘기하며 이 제사를 우리가 하는 게 맞다고 했지만, 나는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우리 집에 찾아올 서른 명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6명의 고모님들은 자신의 어머니의 제사를 치르는 어린 새색시가 안쓰러웠는지, 나만 보면 착하다고 말했다. 제사날에는 오전 10시부터 와서 앉아 계셨다. 오랜만에 만난 자매들은 할 말이 많았다. 나와 형님과 시어머니는 부엌에서 제사 준비를 하면서 고모님들의 점심과 저녁을 차렸고, 중간중간 간식과 커피를 갖다 드렸다.


정이 많은 오라동고모님은 가끔 부엌에 들어와 뭐 도와줄것이 없냐고 물었다. 어머님은 그럴 때마다 아고, 형님. 가서 쉬세요. 라고 말했다. 고모님이 머뭇거리다 거실로 나가면,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평생 저 시누들 일하는 꼴을 본 적이 없다라고 하며, 본인의 시집살이에서 6명의 시누이들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제사때마다 친정에 찾아오는 6명의 시누이와 그들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허리 펼 날이 없었다는 레파토리는 구구절절했고, 아주 구체적이었다. 그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내쳐진 자의 분노였다.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용납하지 못한 자의 절규였다. 서럽고 힘들고, 어이없고 한맺힌 인생의 넋두리였다.


그렇지만,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늘 불평불만인 어머니보다 가끔 만나서 칭찬해주는 시고모님들이 좋았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물어봐주는 고모님,

요새 **이가 잘 해주냐고 묻는 고모님,

네가 잘 챙겨입어야 남편 이 욕먹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고모님,

친정에는 자주 가냐며 일 있을 때만 가지 말고,

수시로 전화라도 해라. 딸 시집보낸 엄마맘이 그렇더라. 하며 손을 잡아주시는 고모님이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뭘 할 때마다 잘한다 잘한다 해줘서 고모님이 우리 집에 오면 누구보다 반갑게 뛰쳐 나갔다.


그럴수록 시어머니는 나에게 고모들이 얼마나 못 됐는지를 말했다. 내 눈에는 시어머니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앞에서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22년이 넘게 집안 일이 생길 때마다 강력한 두 세력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6명의 고모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셨다. 그리고 어제 어머님이 제일 무서워했던 그래서 뒷담화도 제일 많이 했던 서슬 퍼렇던 정드르(주1)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이틀 내내 어머님은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나이가 많았고, 큰 병없이 노환으로 가셨으니 호상이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아들내외와 함께 살았으니 호강이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영정사진이 보기 좋았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면 오래 산다고 누군가 하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경황없이 죽고 영정사진에 쓸 사진을 고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60이 되기 전에 엄마가 죽었으니 왜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는 아무 의미 없지만, 장례식장에서 절을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출처 : 픽사베이


무대장치가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완전히 바뀔 때, 우리가 그때까지 현실 속의 장면처럼 생각했던 것이 한낱 장치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는 죽음의 순간,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무대장치였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주2)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누군가 죽자마자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연극의 무대장치가 수풀과 돌에서 궁전과 탑으로 바뀐다는 것처럼 바뀐다고 말한다. 죽음과 동시에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다른 몫을 받은 다른 존재로 옮겨가는 것이라면, 죽음은 내 속에서 그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고요한 새벽, 키보드 소리, 하얀 모니터화면을 쳐다보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내가 만든 표상과 구상한 세계안에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내 몸과 내 감정을 나 자신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죽으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나를 차지할 것이다. 그때, 세계는 뒤에 남은 사람에게는 같은 무대장치지만, 나에게는 다른 것이 된다.


정드르 고모님은 평생 오일장에서 장사했는데, 지금은 손주며느리가 그것을 이어받았다. 정드르 고모님이 앉아서 세월을 보냈던 그 자리는 변함없지만, 사람은 달라졌다. 사람이 달라졌으니 파는 물건이 다를 것이고, 파는 물건이 달라졌으니 전체가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장면이 바뀌었을 뿐, 연극은 끝나지 않았다.

좋으면 깔깔깔 소리내며 웃고,

맘에 들지 않으면 싫은 티를 팍팍 냈던 정드르고모님,

먹을만큼만 먹어지면 상을 물리고,

믹스커피를 하루에 한 잔씩 챙겨드셨던 정드르고모님이 무대에서 내려갔다.

잠시 불이 꺼지고, 장면이 바뀐다. 연극은 계속된다.


(주1) 정드르 (우물 井 = 제주어 '드르') : 우물이 있는 넓은 들판. 현재 제주시 용담동을 일컫음.

(주) 인생은 무엇인가1, 톨스토이, 동서문화사.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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