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막세이, 그리고 쫄보
지난 주말 들뜬 마음으로 막세이(마르세유)에 다녀왔다. 무려 넉 달 만에 바다를 보기 위해서. 일박 이일의 짧은 여정, 그 가운데에서도 바다를 본 시간은 한나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 기뻤다. 바다는 언제나 완벽하니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 부야베스라는 매운탕 맛이 나는 지역 음식도 참 맛있었고 막세이로 향하는 기차에서는 따뜻한 대화도 나누었다. 좋은 여정이었다.
문제는 둘째 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동이 트기 전 호스텔을 나섰다. 동시에 엄마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프랑스에 상륙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기 기운 있는데 찜찜하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 확진자들(지금은 아니라고 밝혀진)이 리옹에서 발견되었다는 걸 들었다. 막세이 행 열차 환승지였으며, 이주 전에 놀러 갔던 바로 그 리옹에서! 이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시작한 첫사랑 때문에 요즘 살 맛이 나던 차였다. 그래서인지 감염되는 것보다 베드 버그에 물렸을 확률이 더 높은 주제에 ‘나 이대로 죽을 수 없어!’하는 마음이 다급히 튀어나왔다. 아침 일곱 시 반 바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설렘은 불안으로 바뀌었다.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약국을 찾았다. 문 여는 시간을 기다려 마스크와 손 세정제, 그리고 아픈 목을 위해 스프레이를 샀다. 불안한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한나절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이런이런, 우리 동네(이하 C시)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설마설마, 했지만 몸은 점점 더 아팠다. 결국 월요일이 되어 오전 수업을 빼먹고 부랴부랴 병원엘 갔다. 얼마 전 보험을 들어놓아 다행이었다.
결과는, 그냥 심한 독감. 다행이었다. 하지만 왜였을까? 이렇게 아프다가 결국 죽게 될 것 같았다. 사람이 가진 게 많으면 겁이 많아진다더니, 지금의 나에게는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나 보다. 정말 낫고 싶었다. 여기에서 삶이 끝나버린다면 살아온 날들이 너무나도 아까울 것 같았다.
서럽고 무서워질 때면 I를 떠올렸다.
I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체온 일 도를 높이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I를 떠올리면 서늘하게 메마른 몸 깊은 곳에서부터 열기가 새어 나왔다. 뱃속에서 목으로 얼굴로 퍼져나가 땀이 났고 귀가 자꾸 두근거렸다. 마음이 어지럽고 뻐근했다. 아껴가며 I와의 사진을 보았다. 면역력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니,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사랑이라니, 고맙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 힘으로 아픈 배에 밥을 밀어 넣었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따뜻한 밥을 삼켰다. 근 몇 주 동안 입맛이 없어 통 먹지를 못한 참이었다. 소화는 여전히 잘되지 않았지만 먹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운동도 하고 잠도 정시에 잤다.
이틀쯤 쉬자 돈도 아깝고 진도도 걱정이 되어 학교에 나갔다. 선생님에게 독감이라고 이야기하자 놀라더라.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행동을 보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독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일주일치 바캉스를 쓸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마웠다. 많이 고마웠다.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마음까지 써 주어서 고마웠다. 그렇게 일주일을 쉬게 되었다. 뜻밖에 얻은 일주일간의 바캉스. 항상 쉬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무서워서 쉬지 못했는데, 이렇게 바캉스를 쓰게 되다니. 아주 시기적절하고 마음에 든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벌써 주말이 되었다. 그동안 프랑스어 공부는 하나도 안 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푹 쉬니 몸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니 괜찮다. 친한 친구 보리는, 네가 ‘몸 상해도 좋으니까 성공하고 싶다’ 따위로 말을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열이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데 I 때문인지 독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 일단은 감자를 갈고 있다. 잘 먹고 배를 뜨끈하게 채워 다시 힘을 내자. 힘을 내서 더 열심히 I를 좋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