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들은 떠올리는 순간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부끄러움과 후회로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기까지 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또 몇 개의 계절을 통과한 후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조차 사랑이 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혼란스러웠던 봄에는 실컷 방황을 했고, 미숙했던 여름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었고, 나를 잃었던 어느 가을은 상처로 남아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며, 바보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겼던 겨울엔 희망이 있었기에. 슬픔이 그렇듯 아름다움도 도처에 있었다. 그래서 어떤 괴로웠던 시기도 돌아보면 사랑이 되어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지나온 모든 것들을 좋아하게 된다.
한국의 기억들
익숙한 고향을 떠나는 일은 이런 경험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감각과 마음으로 충만해질 때면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겪어야 하는 일이 있다. 익숙한 고향 동네와 멀어지는 일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익숙해서 사랑하는 고향을 잃고 낯선 것들에서 공포를 느끼는 일이다.
고향은 친구와 가족, 매일의 풍경과 일상을 모두 품고 있는 단어였다. 그걸 잃는 게 어떤 일인지, 지난 일 년간의 여행을 통해 대충은 알고 있다. 달이 뜨면 바닷물이 밀려내려 가는 것처럼 만남과 이별, 상실과 공허는 자연스럽고 거대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연스러운 일에 항상 서툴렀다.
이른 아침 학원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아직 어둠을 품고 있는 골목길에서 가로등에 맺힌 공허를 읽곤 했다. 푸른 동이 트고 가로등은 금세 꺼졌지만 맺혀있던 공허는 허공에 녹아 내게로 옮아왔다.
나는 프랑스어를 잘 못했다. 순탄했던 지난 유럽 여행을 떠올리며 대범하게 떠나왔다마는, 호기로운 마음은 반나절 만에 입맛까지 데리고 싹 달아나버렸다. 프랑스어에 대한 열등감, 영어나 한국어를 일절 쓰지 않겠다는 섣부른 고집 때문에 나는 친구가 없었다. 애를 써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외롭지도 온전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불행의 키를 가진 날들이 줄을 지어 지나갔다.
C시의 첫인상
애를 써서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곳에 있어서 좋은 점들을. 보통은 금방 만족이 되지만, 아무리 손을 멀리 뻗고 목을 길게 빼어 동네 구석구석을 더듬거려도 만족스럽지 않은 날이 있다. 그 손길은 금세 프랑스로, 유럽 멀리까지로 뻗는다. 팔을 뻗으면 뻗을수록 조금 울고 싶어 졌다. 빌라 옥상에 매달려 골목골목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들을 쫓으며, 늦게까지 오지 않는 어느 날의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