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점; 쏟아지는 별들 사이로
ㅇ 방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단어는 이 낯선 나라에서 나를 지탱해주기에 너무 작고 부실했다.
ㅇ
유목민처럼 일년을 지낸 적이 있다. 워킹홀리데이를 했을 때인데, 같은 곳에 머무른 기간은 한달에서 세달이 채 되지 않았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이동할 때 옮길 짐들에 미리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했다. 언제 떠날 지 모르니 짐을 늘리지 않았고, 수월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지만 항상 가까운 미래를 걱정하는 반쪽짜리 삶을 살았다. 살림에 미숙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식재료(소금, 간장, 쌀, 기름)나 정말 필요한 작은 물건들도 잘 사지 않았다. 당연히 방을 꾸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곧 떠날 건데 뭐, 그렇게까지. 그런 마음으로 일년을 보내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 공간'이 필요하고, 그곳에서 얻는 안정감을 참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ㅇ 그래서 프랑스에 올 때 많은 물건들을 들고 왔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스탠드나 독서대, 포스터, 일기장, 친구가 선물해 준 책까지. 결국 짐을 풀어헤치고 다시 싸야 했고, 그러고 나서도 수화물 추가요금을 20만원가량 내야 했다. 어떤 물건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엄마와 실랑이를 벌였다. 몇몇 책과 옷이 빠졌다. 엄마는 공항 바닥에 주저앉아 배낭을 뒤적거리는 나를 보며 미련하다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내가 빼 놓은 고춧가루를 집어넣더라. 그렇게 꾸역꾸역 가져간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나를 정말 기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덜 불안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떠날 때까지도 나는 그 공간을 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더 큰 무엇인가를 놓고 왔나 보구나 싶다.
파란 방의 커다란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을 때면, 종종 누군가가 들어올 것만 같았다. 문 저편 통로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함께 살고 있었던 것처럼. 가끔 화장실의 샤워부스를 열어보는 건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을 열고 터벅터벅 들어오는 누군가를 상상하면 반갑고 기뻤다. 스물다섯 남짓한 나의 짧은 인생에서 그 문고릴 잡았던 건 대체로 가족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상의 침입자는 가족들의 얼굴을 하고는 했다.
ㅇ하지만 그 이외에도 많은 얼굴들이 존재했다.
ㅇ그 얼굴들,
ㅇ알지 못하지만 아는 것만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느닷없이 통했다고, 위로받았다고 느낀 사람이나 순간, 풍경들이다. 그중 대부분은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다. 책, 연극, 음악, 영화와 같은 한 편의 작품과 관객 - 그런 수준의 관계들이다.
ㅇ동시에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것들이 고갤 내밀었다. 친구라고 여겨왔던 사람들, 지금은 끊어졌을지 모르는 관계들.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 역시 이제는 그들을 안다 말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추억. 사람과 과거의 어느 지점. 무수한 두 쌍의 점들 사이에서 내가 모르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ㅇ오고 갈 수 없기에 과거와 미래가 우리에게 애틋하고 시린 것처럼, 나는 이 점에서 저 점으로 절대 갈 수 없다. 오갈 수 없는 점들은 늘어가고 있고, 나는 그 언젠가 몽골의 초원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마주했던 심정으로 점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ㅇ- <운행하는 별들>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