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명을 찾아가는 길
미국의 교육자이자 작가 파커 J. 파머가 쓴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2018년 겨울, 긴 번아웃을 겪고 있을 때였다.
장기 근속휴가를 받아서 10여년 만에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인도 가기 며칠 전에 만난 J 언니는, 요즘 읽은 책들을 하나씩 비우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며 내가 생각났다고 나에게 이 책을 건내 주었다.
이름도 낯선 작가였고, 어떤 내용인지도 가늠이 안갔지만
인도에 가는 배낭에 이 책을 넣었다.
당시 나는 길을 잃고 헤메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회사가 더이상 좋지 않았고,
열심히 일해서 높은 직급의 고액연봉을 받는 위치까지 올랐는데,
고작 내가 원했던 게 이런거였다니...사실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라는 뒤늦은 알아차림에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그렇다고 모든걸 그만두고 다시 시작할 용기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빛으로 가득한 성지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어둠의 여행을 거쳐야만 한다. 어둠의 경험은 진정한 나의 자아로 돌아오는 데 곡 필요한 것이었으며,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내가 빛 속에 머무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마치 따듯한 물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개구리처럼,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아무런 것도 바꾸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는 사라져버릴 거라고.
육체적 죽음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는 죽을 수 밖에는 없다고.
인도로 떠난 건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욕망과 번잡함 속에서는 명료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복잡한 인도로 떠났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적어도 인도에는 나를 자극하는 욕망과 욕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다 보면,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의 삶이란,
결국 다 자기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젊은 시절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는 별 상관없는 기대들에 둘러싸인다. 우리의 자아를 알아 주기보다는 어떤 틀 안에 끼워 맞추려는 사람들의 기대 말이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 단체에서 우리는 참자아를 버리고 사회적인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 또한 우리 자신 역시 두려움에 내몰린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참자아를 배반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인도에서는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밑줄을 치고, 밑줄친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뉴스레터를 쓰려고 이 책을 다시 읽었는데,
오마이갓.... 그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던,
그래서 생각도 나지 않고 밑줄조차 그어져 있지 않은 수많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당시 책을 읽으며 끄적였더 메모들도 눈에 띄는데,
나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주듯,
참 자아가 제발 나의 갈길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램만 한 가득 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책의 메시지가 무의식중에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인지
지금 돌아보니 참 자아의 생김새대로 나의 소명을 따르며 살 수 있게끔 도와주는,
옳은 결정들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찾으려 노력했고,
아무리 멋져보이거나 좋은 일같이 보이는 일도,
나답지 않은 일이라고 여겨지면, 그래서 나를 끊임없이 소진시키고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나의 길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내려놓았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만약 내가 본연의 나와 상관없는 어떤 훌륭한 일을 하려고 하면, 한동안은 남에게나 나에게 근사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결국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는다. 나 자신과, 남을, 우리의 관계를 왜곡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좋은’일을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도 더 큰 해악을 끼치고 말 것이다. 내가 나의 본성, 관계의 본성이 아닌 어떤 일을 하려고 덤빈하면, 그 순간 나의 등 뒤에서 길이 닫힐 것이다.
그렇게 알아차림과 내려놓음을 반복하다보니,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 같다.
다행이 지금의 모습이 참자아의 모습에 조금 더 근접해진 모습인 것 같이 디헹이다.
이제는 소명을 단순히 일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가둬놓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소명이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진짜 내가 되어가는 방식이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참 자아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며,
삶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아차려야지.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 그리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일어난 일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길잡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본성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믿어야 한다. 길이 닫힐 때면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길이 열릴 때면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우리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