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Dec 11. 2023

비건식, 벌써 1년...!!

이번 주말에는 정말 오랜만에 생선을 먹었다. 

비건을 하는 나에게는 일종의 치팅데이. 



비건식을 일 년 정도 하면서 비건식을 유지하는 나만의 패턴이 생겼는데 

집에서 먹을 땐 완벽하게 비건으로 먹되, 

밖에서 식사할 땐 약간 융통성 있게 먹는다. 

주로 치즈까지는 먹고 아주 가끔 해산물을 먹는다. 

고기는 먹지 않지만 고기 육수가 들어갔을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국물요리는 선택권이 없을 땐 먹곤 한다. 



뭔가가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땐 며칠 기다려보고 그래도 먹고 싶으면 먹어준다. 

지금까지 너무 먹고 싶었던 건 게란후라이와 오징어가 들어간 오징어파전, 그리고 마르게리타 피자. 

친구들을 만나면 늘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고기 안 먹고 싶어?'라는 질문인데, 

고기는 정말 안 먹고 싶다. 너무 먹고 싶은데 참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먹고 싶다. 



아, 고기가 먹고 싶을 때가 두어 번 있었는데, 

아주 스트레스를 받은 날, 고기를 잘근잘근 씹고 싶었다. 

내 안의 공격성이 고기를 먹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왠지 좀 소름 끼쳤다. 

물론, 고기를 먹지는 않았다. 

스트레스받는 일을 잘 해소하니 고기를 먹고 싶다는 충동도 사라졌다. 






집에서 비건을 하는 건 사실 너무 쉽다. 

예전에도 익힌 고기나 생선을 좋아하긴 했지만, 생물은 잘 못 만지고 냄새도 맡는 것도 싫어했다. 

내가 좀 비린내에 취약한데 생선이나 고기는 아무리 싱싱해도 미세한 비린내가 난다. 

죽음으로부터 나오는 그 냄새.  

그래서 집에서는 비린내를 향신료로 잡은 닭가슴살이나, 햄/소시지류를 먹었다. (사실 몸에는 더 안 좋은..) 

해산물은 집에서 거의 안 먹었고 가끔 소고기를 구워 먹긴 했다. 

그러면서도 왠지 고기나 해산물이 없으면 뭔가 빠지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아예 집에서는 아주 대충 챙겨 먹거나 닭가슴살 같은 걸로 끼니를 때웠다. 



비건을 하며 가장 좋은 건 채소만으로도 너무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늘 조연이었던 야채들이 요리의 주연이 될 때, 얼마나 아름답고 다채로워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비건으로 집밥을 먹을 땐 부족하다는 생각이나 아쉽다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문제는 밖에서 식사할 때 생기는데, 

고기와 해산물, 유제품이 주인공이 되는 일반 식당에서는 

채소 위주의 식사는 왠지 볼품없고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해산물 파스타에 해산물 대신 채소와 버섯을 넣으면 얼마나 맛있고 훌륭한데, 

식당의 쉐프들도 고기나 해산물이 메인이 되어야만, 온전한 식사가 된다는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비건만이 옳고 논비건은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 이번생에 풀어야 할 카르마가 다르니까. 

일부 비건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라 생각한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고기를 드셨고 (물론 지금처럼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진 고기는 아니었지만) 

고기를 먹는다고 그 사람자체가 부도덕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업다. 

문화적 맥락없이 정치적 올바름으로 모든 걸 판단해버릴 때, 

우리가 정작 추구하려 했던 포용의 가치는 사라진다. 



다만, 우리가 먹는 고기가, 해산물이, 유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오는 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별 생각없이 사먹는 고기 한덩이와 생선 한마리가 

생각보다 이 지구 전체의 순환에 크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새롭게 배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유나 고기를 먹어야만 건강해진다는 

그릇된 영양 신화로부터도 벗어나야 하고. 



우리가 먹는 한 끼가 어떻게 오는지에 대해 알고,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한 식물, 동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때로는 미안해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런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르마와 책임의식, 희생자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