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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형제자매 '초록'의 이야기-1부

중증 발달장애인 언니와 함께 자란 시간

by 레몬자몽

비장애형제자매 자조 모임을 함께하는 동생이 한 명 있어요. 이 동생에게 중증 발달장애인 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중에 꼭 이 동생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 보고 싶었어요. 발달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은 많지만, 이렇게 최중증인 형제자매를 둔 경우는 만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지난 달 자조 모임이 끝나고, 함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거리에 나오기 어려워서 사람들 눈에 거의 띄지 않아요. 그 형제자매들도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그 형제자매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증 발달장애인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이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요.




중증 발달장애인 언니를 둔 초록의 이야기


Q1. 내 가족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저, 이렇게 5명이에요. 언니와 제가 쌍둥이고, 언니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에요. 현재는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네 식구가 한집에서 살고 있어요.


Q1-1. 언니에게는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가요?


언니는 중복발달장애*인이에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몸이 안 따라줘요. 밥도 먹여줘야 하고, 앉혀주고 눕혀줘야 하고, 기저귀 갈아줘야 하고, 거의 모든 걸 아기처럼 해 주어야 해요. 침도 흘려서 수건으로 닦아줘야 하고요. 근육이 굳지 않게 재활치료도 하고 있고요.


지적 장애도 함께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발달이 느린 거죠. 초등학생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 상호작용은 하는 편이에요. 감정 표출도 확실하고, 대답도 확실하고. 교류가 되거든요.


*중복발달장애: 원인이나 종류, 정도와 관계없이 단일 장애를 동시에 두 가지 이상 갖는 상태.


Q2. 중증 발달장애인 언니와 함께 자란 성장 과정을 이야기해 주세요.

- 어릴 때는 언니의 장애나 그 중증도를 어떻게 인식했나요?


쌍둥이라 그런지, 아주 어릴 때부터 ‘언니가 장애가 있다’ 정도의 인식을 가진 상태로 자랐어요. 언니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까, 제가 언니를 동생처럼 돌봤던 기억이 나요. 기저귀도 봐주고, 어디 가야 할 때 함께 가고, 물도 먹이고 했어요. 특히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도와서 언니를 많이 돌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춘기가 오면서 언니를 보살피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하고 싶지 않고,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싫었어요.


Q2-1. 친구들에게 언니를 어떻게 소개했나요?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는 “우리 언니는 장애가 있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어느 날에, 같은 반 친구들이 “야, 쟤네 언니 장애인이래.”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 한마디가 저에게 큰 상처가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언니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고 중학교 시기를 보냈어요. 사람들에게 언니가 있다고 말하면 몇 살 차이인지 물어보고, 그래서 쌍둥이라고 말하면 언니는 뭐 하는지를 물어보더라고요. 결국 언니가 있다는 걸 말하면 언니가 장애인이라는 사실까지 말하게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오빠만 있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고 여린 마음이었어요. 그 한마디가 뭐라고, 언니 존재 자체를 숨기고 살았는지 참 죄책감이 많이 들어요. 그때도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미안함, 하지만 밀어내고 싶은 마음 등… 여러 마음이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답니다.


Q2-2. 그때 느낀 감정을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 있다면, 부모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 주셨나요?


기억이 잘 안 나요. 그 당시에 바로 말씀드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라고 지나가듯이 말한 것 같아요. 부모님 반응도 별로 기억이 안 나요.


그때의 제 감정은… 제 기질과도 관련된 것 같은데… 부끄러웠어요. 그 말 자체로만 보면, ‘쟤네 언니가 장애인이다.’ 그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 감정이 건드려져서 놀림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 친구들이 정말 그런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없어도 되는 사연이 있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게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더 싫었고요. 그러면 안 되지만… 좀 잘나고 싶었나 봐요.


Q2-3. 그러면 사춘기 때 언니와의 관계가 특별히 힘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언니가 장애인인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언니를 볼 때면 오만 가지 감정이 함께 차올라서 언니랑 함께하는 자리를 점점 피했고, 공부를 핑계로 거의 언니를 돌보는 일을 그만뒀어요.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이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인정하고 싶어서 언니의 존재를 다시 말하기 시작했어요.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게 말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요. 물론 언니를 돌보며 돕고 싶은 마음과, 제 삶을 온전히 살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충돌하고 있어요. 하지만 언니와는 매일 즐겁게 웃고 대화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Q2-4. 그러면 언니의 존재에 대해 예전처럼 놀리듯이 말하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나요?


그런 사람을 더 만난 적은 없었어요. 다들 머리가 커서 그런지, 툭 내뱉듯이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언니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걸로 상처를 받은 적은 없어요.


Q2-5. 어릴 때와 비교해서,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사실 제 인식이 조금 바뀐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주변인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으니까,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하는 느낌? 하지만 언니에 대한 제 인식이 바뀐 게 제 마음이 편안해지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이건 큰 흠이 아니고,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많이 있고, 나만 말 못할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진짜 부끄러운 게 되겠구나’. 부끄럽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확실히 휠체어 탄 분들이 주변에 많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 가족이랑 일본 여행을 가서 느꼈어요. 거리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젊은 사람들도 휠체어 탄 분들 많고… 그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Q3. 언니의 ‘중증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나 시선이 힘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 어린 시절 친구들이 언니를 보고 보였던 반응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친한 친구들은 뭔가 애매한 반응을 보이면 제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는지 언니를 보았을 때 반갑게 인사하곤 했어요. 물론 제가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만 언니를 보여줬기 때문이기는 해요. 언니의 모습을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게 항상 부끄러웠어요. 저나 친구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저부터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들에게 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조금 부담되긴 해요. 제 마음부터 더 건강해져야 할 것 같아요.


Q3-1. 연애나 친밀한 관계에서 언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나요?


학창 시절에는 제가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혹시나 다른 친구에게 말을 옮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언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부담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굳이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특히 직장에서요.


연애 관계에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이 언니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에요. 연인에게 언니에 대해 알리는 것은 뭐랄까… 먼 훗날 결혼했을 때 올 부담이 있다는 걸 미리 알리는 느낌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 그냥 가족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 언니는 이래.’하고 알리고, 서로 일상을 나눌 때 언니 이야기도 종종 해요.


Q3-2. 언니가 ‘차라리 경증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저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받는 게 정말 싫은 것 같아요. 근데 언니가 울 때나 소리를 지를 때면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고, 저희가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참 답답해요. 언니가 불편한 감정을 드러낼 때 뭔가 해결을 해 주고 싶은데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으니까, 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기 어렵고, 언니는 언니대로 참 답답할 것 같아요.


경증이었으면 좋겠다고 딱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언니가 조금만 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많이 생각해요. 언니가 장애가 없었다면 누릴 수 있었을 세상을, 장애로 인해 다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파요. 매일 밤 언니를 보면서 울었던 시간도 있었어요. 단순히 제가 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언니를 위해서 언니가 더 경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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