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진로, 미래 계획에 대해
오빠는 저와 언니보다 5살이 더 많아요. 성인이 되고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집과는 아예 멀어진 느낌이에요. ‘장남인 오빠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기에는 저희 오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오빠는 항상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걸로 보였어요. ‘나중에 어떻게 되려나, 오빠가 언니를 책임져줄까? 오빠가 도망가면 내가 다 끌어안아야 하나?’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Q4-1. ‘앞으로의 미래’ 또는 ‘내가 꿈꾸는 가정’에 대해 오빠와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요?
사실 저도 오빠에 대해 잘은 몰라요. 경제적 독립은 했고, 자기 직장 다니면서 돈 벌고 있는 남자. 가족들끼리는 몇 주에 한 번씩 모여서 식사하고, 카톡으로 교류하고. 그런 미래에 관한 대화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하루빨리 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은 해요. 이번 가족여행을 계기로 안 나누던 대화를 하면서 고민을 나누기는 했어요. 연애 얘기도 하고. 이게 시작이 될 것 같아요.
Q4-2. 그러면 언니를 나중에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감과 관련해서, 부모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나요?
대화를 아주 깊게 나누지는 않았지만, 불만을 토로하듯이 얘기한 적은 있어요. “오빠가 같이 책임질 수 있나? 나중에 내가 다 떠안는 거 아닌가?” 사실 오빠가 그렇게 안정된 것 같지도 않고…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제 눈에는 미덥지 않은 거죠. 이걸 부모님께 얘기했을 때, 부모님께서 정확하고 진지한 대답을 해 주지는 않으셨어요. “오빠가 일단 자리를 잘 잡아야지.” 이 정도?
Q4-3. 부모님께서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오빠와 언니, 자신을 양육했다고 생각하나요?
부담을 안 주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네 인생 살아라. 물론 네가 언니를 가끔 들여다보기는 해야겠지만, 언니와 관계없이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이렇게 많이 말씀해 주셔서, 책임감은 느끼면서도 사실 도와드린 건 별로 없어요.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덜 느끼기는 했지만, 그 부담이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어요. “네가 잘돼야 한다.” 엄마는 오히려 부담을 안 주셨는데, 아빠가 지나가는 말로 “너에게 우리 집안이 달려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에게는 꽤 진심으로 다가왔죠. 그러고 보니 아빠는 좀 부담을 주시기는 했던 것 같아요.
Q4-4. 나 말고 다른 비장애형제자매가 더 있는 것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장애 형제자매를 책임지는 것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부모님은 어릴 때 저와 언니를 돌보느라, 오빠에게 못 해 준 게 많다는 죄책감이 커요. 엄마는 언니를 돌봤고, 아빠는 저를 돌봤고, 오빠는 어찌 보면 부모님 손길을 못 받았죠. 또 첫째니까 못해 준 게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이 모든 집착이 저에게 더 심하게 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오빠도 부모님께 충분히 많은 걸 받고 자라지는 못했어요.
저도 알게 모르게 오빠한테 의지를 많이 하나 봐요. 사실 장애가 있는 언니가 제 동생이었다면 큰 책임감을 가지고 돌봤을 텐데, ‘오빠가 장남이니까, 뭐라도 짊어져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 좀 더 듬직한 오빠였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버스에서 오빠랑 통화하면서 언니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오빠가 나중에 오빠가 다 책임질 거니까, 그때까지만 엄마랑 아빠랑 언니를 잘 보살피라고 그러더라고요. 이 말 듣고 버스에서 펑펑 울었어요. 항상 도망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처음으로 오빠를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어요. 물론 그 이후로 한 번도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곧… 나누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건설적인 논의가 잘 되길 바랄 뿐이에요.
장애 정도나 종류마다 가족들이 겪는 일은 너무 달라서,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증이기 때문에 가장 힘든 건,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어디가 아플 때, 원하는 게 있을 때 해결해 주고 싶은데, 아무리 시도해도 완벽하게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어서 서로 정말 답답하고 힘들어요.
Q5-1. 복지관이나 프로그램이 중증보다는 경증 발달장애 중심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복지관에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대체로 경증 장애인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아요.
가족여행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저희는 종종, 제 기준 꽤 자주 가요. 여행지는 전동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곳들이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진입이 안 되는 장소가 정말 많아요. 맛집보다는 그냥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면 감사하며 들어가는 편이에요. 엘리베이터 없는 곳은 꿈도 못 꾸고, 그저 갈 수 있는 곳들만 열심히 찾아서 다녀야 해요.
Q6-1. 여행을 1년에 몇 회 정도 가나요? 어린 시절과 비교했을 때 그 횟수에 차이가 있나요?
어릴 때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은 어떻게든 갔어요. 그런데 중학생 이후로는 제가 바빠져서 못 가고, 대학생 때는 제가 노느라 같이 안 갔어요. 요즘 몇 년 사이에 기회가 되면, 분기에 한 번씩은 당일치기라도 어딘가를 가요.
이게 가능한 이유가, 기아자동차에서 하는 초록여행이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때문이에요. 사연을 써서 당첨이 되면, 신청한 날짜에 장애인 특장차가 집 앞에 와 있어요. 주유비도 지원해 줄 때도 있어요.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여행하니까 여행 경비도 경감되고, 차가 되니까 훨씬 편안하게 여기저기 다니는 것 같아요.
Q6-2.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요?
주로 부모님 두 분이 다 하세요. 부끄럽게도 저는 지금은 거의 안 돕는 것 같아요. 같이 가는 게 도와드리는 거라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요. 힘쓰는 일은 아빠가 주로 하시고, 오빠가 있으면 오빠도 같이 해요. 엄마는 언니 밥 먹이고 기저귀 가는 일을 주로 맡아서 하세요.
Q6-2-1. 왜 스스로가 ‘오만하고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나요? 부모님께 이런 감정을 말씀드려 본 적이 있나요?
제가 좀 더 착한 마음을 가졌다면 도와드릴 법도 하죠. 저도 가족이니까 역할을 가져야 하지만 저도 힘드니까… 엄마 아빠가 이기적이라고 하세요. 저밖에 모른다고. 저도 같이 살고는 있지만 멀찌감치 도망 나오고 싶어요.
이런 마음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해 본 적은 없는 것 같고, 부모님도 콕 집어서 이 마음을 이해해 주신 적은 없어요. 처음에는 “여행 같이 가 주기만 해.”라고 하셨지만 이제 점점 “하나도 안 돕는다.” 이렇게 잔소리를 들어요. 우리 집이 그렇게 따뜻한 말을 해 주는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고요.
Q6-3.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여행지를 찾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인데,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치 않는 역할이 부여된 적이 있나요?
저도 그렇게 알아보는 게 성향에 맞지 않아서, 작년에 다른 여행을 갔을 때는 알아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앉아서 다음에 어디 갈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게 피로도가 크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맛집 가고 싶은데, 웬만한 맛집은 공간도 좁아서 휠체어 끌고 다니기가 쉽지 않아요.
Q6-4. 여행을 하는 중에, 언니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나 즐거움을 포기한 적이 있나요?
언니는 스스로 몸이 조절되지 않다 보니까, 좋으면 크게 웃고 싫으면 크게 소리를 질러요. 워낙 소란스러운 가족이기도 해서, 한국에서는 여행을 가서 울거나 소리를 질러도 좀 부끄럽지만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상황이 다르더라고요. 일본은 원래 조용하고 서로 피해 주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해서, 우리 가족이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 매번 일어났어요. 언니를 조용히 시킬 방법도 없어서, 정말 부끄럽고 답답했고, 일본 여행은 안 되겠다고 수십 번 결심했어요. 우리 가족만 시끄럽고 다른 여행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너무 싫어요.
가족여행을 할 때에는 저 자신만의 즐거움은 대체로 포기하는 편이에요. 다녀오는 것만으로 아주 큰 일이고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 제가 원하던 여행은 내려놓고, 그저 제 목표를 ‘짜증 내지 않기’로 잡고 여행을 다녀와요. 내가 원하는 걸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마음으로. 식당 들어갈 때 쉽게 들어가면 좋은데, 턱이 있다거나 하면 가족들이 힘을 써서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입구가 좁은 가게면 지켜보고 있기도 싫고, 모두의 이목을 끄는 것도 싫고, 너무 번잡하고 번거롭고, 너무 애를 쓰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없어 보이는 거예요. 부모님도 힘들어 보이고. 그러면 혼자 슬그머니 빠져 있어요. 아주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거죠. 다른 일행인 것처럼 조금 떨어져서 앉아 있어요. 도와드리면 참 좋겠지만… 아직은 마음이 힘들어요.
Q6-5. 여행을 안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려 본 적이 있나요?
-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서 가는 것인가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더 나누어 주면 좋겠어요.
진짜 가기 싫을 때는 안 갔어요. 저도 가고 싶으니까 간 게 대부분이기는 해요. 그 안에서 혼자 재미를 찾아요. 혼자 사진 찍고, 맛있는 거 먹은 거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저 혼자 열심히 꾸미고.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가족이랑 여행을 가나 싶은 마음도 있어요.
우리 집은 언니의 존재 말고도 불안정한 요인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삶만을 꿈꾸며 자랐어요. 진로를 고민하면서 제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 보는 시기가 있었고, 이때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마음에 딱 들어왔어요. 안정적인 삶을 바랐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우선시했던 것 같아요.
만약 언니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안정을 추구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훨씬 많은 걸 해 보면서, 돈을 좀 늦게 벌더라도 더 하고 싶은 걸 찾는 데에 집중하고, 그 기간이 길어지는 걸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전 언니로 인해 취업이 빨리 하고 싶었어요. 어떤 다른 직업을 가졌을지는 감이 안 와요.
Q7-1. 교사로 일하면서, 언니의 모습이 겹치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나요?
아직 경력이 적어서, 언니의 모습과 겹치는 학생은 못 만나봤어요. 다만 같은 학년 다른 반에 한 명이 장애가 있는 쌍둥이가 한 반에서 생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조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7-1-1. 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나요?
장애가 있든 없든, 쌍둥이는 무조건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같은 반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둘이 서로의 유일한 친구가 되게 해서는 안 돼요. 분리된 환경에서,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도록 해 주는 게 필요해요.
여기에 더해서 한 명이 장애가 있다면 더욱 분리해야 해요. 내 형제자매가 가진 장애로 인해서 나도 인식할 수 없는 여러 불편한 감정을 겪을 텐데, 같은 학교, 같은 나이에 같은 반이면 비장애형제자매에게 매 순간 너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을 거예요. 우리는 성인이니까 그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지만, 어릴 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싫다가, 좋다가, 미안하다가, 책임감을 느끼다가, 부담감, 죄책감, 시기, 질투, 그 모든 걸 바로 옆에서 경험해야 하잖아요. 부모님이 편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요. 같은 반 안에서 또 다른 보호자처럼 두는 거죠.
Q7-2. 언니와의 경험이 학생이나 보호자와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줬나요?
평소 언니에게 하던 말과 반응이 학생들에게도 나오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언니처럼 대하지 않고 동생처럼 대하다 보니까, 언니를 칭찬하던 방식이 학생들에게도 일부분 적용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린아이를 칭찬하는 것처럼 간단하고 명료하게만 칭찬을 해 와서 그런지, 요즘 학생들에게 하는 피드백이 너무 얕은 수준인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참 어려운 부분이에요. 부모님이 나이가 드셨을 때, 제가 직접 언니를 돌보기보다는 활동지원사들께서 언니를 돌봐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선 언니가 자립할 수 있게 미리 환경적인 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뇌병변 1급인 만큼, 활동 지원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는 점을 활용해서 여러 명의 활동지원사를 제가 면접을 봐서 뽑고, 스케줄 관리를 해드리면서 언니를 지원해 주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아마 이 일은 오빠와 함께 해야겠죠? 가장 걱정인 건, 부모님이 아프실 때 부모님을 보살피면서 언니까지 돌보는 상황이에요. 아마 많이 힘들 것 같아요.
Q8-1. 부모님과 이런 상황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거나, 관련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전달받은 적이 있나요?
진지하게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부모님은 지나가면서라도 미래에 대해 한마디씩 해 주시고, 그게 저에게 안도감을 줘요. 예를 들면, “언니를 자립시켜서 나라에서 지원을 받고, 거기에서 언니가 혼자 살게 할 거야. 언니가 완벽하게 혼자 살 수는 없으니까, 가까운 곳에서 자주 들여다봐 줘. 한 번씩 같이 자거나 챙겨줘. 아주 가까운 곳에서 계속 살펴봐 줘.” 이렇게요. ‘내가 언니랑 따로 살 수 있기는 하구나!’ 이런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큰 안심이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네가 언니와 같이 살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언니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부담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이어서, 그 전에는 너무 불안했는데 이 말을 듣고 나서 크게 안정이 됐어요.
하지만 구체적인 경제적 상황 같은 건 몰라요. 부모님과 앞으로 대화를 더 나누고 싶은 내용은, 언니의 루틴에 대한 부분이에요. 루틴이 정리된 내용을 안내받고 싶어요. 제가 파악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하고 싶지 않은 숙제처럼 마음의 짐이 되고 있어요. 어느 물품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지, 활동 지원 사업은 몇 시간을 어떻게 나누어 이용하고 있는지, 제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하는지. 이건 미래의 배우자에게도 알려줘야 하니까요. 어차피 알아야 하면 일찍 알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오빠와 제 역할을 확실하게 분담해 주면 좋겠어요.
Q8-2. 중증 장애인과 관련된 제도나 지원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중증 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는 게 힘든 일인 만큼, 그 이상의 보수를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만 인력이 잘 구해질 것 같아요. 중증 장애인을 위한 제도 자체가 더 많이 생겨나고 다양화됐으면 좋겠어요.
Q8-3. 본인의 삶과 언니의 삶을 동시에 지키기 위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 삶에서 어느 정도까지 언니를 위해 할애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에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저도 직장을 구하고, 엄마 아빠도 건강하시고, 언니도 즐겁게 같이 생활하니까요. 이 좋은 시절이 지나가면 언젠가 정말 깊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부모님의 일이었던 것들이 제 일이 되겠죠? 그날을 두려워하기만 하면서 아직은 큰 생각 없이 지내고 있어요. 머릿속이 꽃밭인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왔을 때, 제가 조금 덜 힘들기 위해서는 언니를 위해 제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불평하지 않고, 기쁘게 언니를 돌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제 마음을 다져 볼 생각이에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런 상황에서도 가족들의 사랑 많이 받고 잘 자랐네. 넌 잘못이 없어. 그저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뿐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항상 못 받은 것, 부족한 것, 잘못한 것을 마음에 많이 담아두는 편이에요. 어린 시절의 그 수많은 마음을 안아주고 싶어요. 언니를 숨겨왔던 것도, 잘 도와주지 않았던 것도,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니까요.
장애인 당사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비장애형제자매도 불안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힘들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사회가 인지해야 해요. 학교 현장에서도 장애 학생을 위한 지원은 많지만, 그 형제자매를 위한 지원은 없더라고요. 그 방식은 많이 고민해 보아야겠지만, 초기 교육과정에서부터 비장애형제자매를 위한 심리상담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누구와도 이런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느낀 건, 중증 발달장애인이 거리로 나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더 마련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장애와의 공존이 당연한 사회가 되고, 그 가족들도 사회의 시선에서 더 자유로워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지는 마음의 짐도 줄어들어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퍼지길 바라면서,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