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 하고 싶은 말

초/중/고등학생 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

by 레몬자몽

2024년 중순 즈음,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와 함께 비장애형제자매 멘토링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초, 중, 고등학생인 비장애형제자매(멘티)와 성인 비장애형제자매(멘토)를 매칭해, 비장애형제자매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네트워킹의 주 목적은 멘토에게 멘티들이 장애형제자매와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정서적 지지도 얻고, 현실적인 조언도 얻을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멘토로 활동할 어른 비장애형제자매를 찾기가 어려워서 무산되었다. (나는 아주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록 이 사업은 무산됐지만, 글의 힘을 빌려서 내가 어린 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몇 가지만 해 보려고 한다.




1. 장애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당연히 형제자매와 가족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장애를 접할 일이 많은 직종에 더 노출될 거다. 특수교사, 치료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이 떠오른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은 직업이 있다. 하지만 장애를 만나는 직종에 종사할 필요는 없다.


가족의 영향을 받아서 이쪽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게 별로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형제자매가 아니었다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졌을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가?'를 또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더 마음속 깊이 들어가서 나 스스로를 만나야 한다. 내 안에 다른 역량이 많이 있는데, 환경적 영향에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 특수교육과, 물리치료학과, 사회복지학과 등에 입학해 장애에 대해 배우는 게 쓸모 없는 건 절대 아니다. 내 형제자매가 가진 장애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게 되고, 다양한 사례를 배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듣지 못하고 자랐다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형제자매가 중증이라면 더더욱. 내 형제자매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게 요즘은 더 빠르다. 그리고 도움이 될 만한 복지 제도나 정책 같은 것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역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게 더 유익하다.)


2. 장애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때는 심사숙고할 것.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아주 숭고한 일이다. 대체로 보수가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좋은 일 하시네요.'와 같은 말이나 들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좋은 마음에서 하겠지만.) 그만한 소명의식과 의지가 있어야만 오래 해 나갈 수 있다.


장애 유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직업 선택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일이므로 심사숙고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처음 특수교육을 전공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아빠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집에서 그렇게 장애를 접하고, 밖에 나가서도 장애를 접하고 싶니?"라고 하셨다. 원가족과 같이 살면서 특수교사로 일하는 비장애형제자매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모두가 하나같이 "인생에 쉬는 시간이 없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나 또한 집 문제로 아주 잠시 동안 원가족과 살았을 때 똑같이 느꼈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그만큼 내 안의 자원을 퍼 주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스스로 내면의 자원이 충만한가, 자원이 바닥나더라도 빠르게 채울 수 있는가,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나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서 보듬으려고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건 내 잘못도,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가진 상처가, 내가 보듬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인 거다. 하지만 같은 장애인 가족으로서 이 길을 택한 것에 회의감을 느낄 때가 분명히 온다. 그때 느끼는 허탈함과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내가 그만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기를 바란다. 그걸 알기 위해 유관 기관(복지관이나 특수학교 등)에서 최소 1년에서 2년 정도는 직접적인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물론 그 정도도 하지 않고 이쪽 분야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 말이다.)


3. 죄책감 가지지 말기.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


내가 살아야 내 형제자매, 내 가족도 살지 않겠는가? 가족을 생각하기 전에 나를 먼저 생각하자. 내가 처음 비장애형제자매 자조모임 '나는'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자조모임의 명칭이 너무나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양육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기에, 언제나 장애형제자매보다 뒷전이 된다. 그건 부모의 탓이 아니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스스로 '나'에 집중하고 '나'를 챙겨야 한다. 부모님은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먼저 산소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가능하다면 스무 살에는 물리적 독립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경제적으로는 부모님께 지원을 받더라도, 우선 몸이 떨어져 있으면 자신의 삶과 가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족을 도울 더 좋은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경제적 독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경제적 독립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야 정서적 독립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가족과 함께 살며 돌봄의 부담을 나누어 지는 방법도 좋지만, 돌봄이라는 굴레에 정서적으로 젖어들어 함께 건강해지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이건 장애의 정도가 심할수록 더 그렇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물리적 독립을 해 보고, 내가 원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지 아닌지 판단할 기회를 가져볼 것.


4. 내가 잘 사는 건 분명 중요하다.


'잘 산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을 가지는 것,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 정의는 내리기 나름이다. 분명한 건, 내가 잘 되고 잘 사는 건 중요하다는 거다. 그건 장애형제자매를 위한 것도, 부모님을 위한 것도 아니다. 비장애형제자매인 나를 위함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내가 비장애형제자매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죄책감, 부담감,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비장애형제자매들은 돌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혹은 하기 싫어한다는) 죄책감, 장애형제자매 몫까지 해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사회적으로 바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쟤가 형제자매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와 같은 사회적 시선, 또는 반대로 '무슨 부담이 있다고 저렇게 힘들어하지?'와 같이 그 어려움을 축소시키는 시선 등 다양한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건 비장애형제자매로서 성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적게 느끼고 누군가는 많이 느낀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비장애형제자매라는 정체성 때문에, 삶을 살며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다. 이렇게 삶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새겨지는 감정들은 씻어내기가 어렵다. 이런 감정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우선 나 스스로가 자기효능감을 느껴야 한다. 내가 내 삶을 잘 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의하는 '잘 사는 삶'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이건 내가 형제자매의 몫까지 해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부모님의 기대 때문도 아니다.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이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젊을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보며 '잘 사는 삶'을 나름대로 정의해 보고, 그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권하고 싶다.


5. 우리는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게 된 여러 자질이 있다. 그 자질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살자.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주변 자극에 민감하고, 사람들의 기분이나 상태를 잘 살피며, 그에 잘 맞춰주는 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발달 수준이 맞지 않는 장애형제자매와 놀이해 주는 가장 좋은 파트너로서 인내심과 기다림을 배우며 자랐다. 또 그 안에서 비언어적인 표현인 행동과 표정을 잘 읽어내는 예민함을 길렀다.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은 대체로 장애형제자매를 향해 있고 형제자매 몫까지 해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책임감도 있었기에, 우리는 더 열심히 해내려는 태도로 완벽주의와 책임감을 일찍부터 가지게 됐다.


어릴 때부터 어쩔 수 없이 했던 그 모든 경험이 우리를 조금 더 인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조금 더 민감하며, 조금 더 완벽하고 일을 잘 해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걸 억울하거나 서럽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만한 자질이 나에게 있음을 감사히 여기자. 그리고 그 자질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내자. 우리가 가진 이 특별한 경험이 우리의 삶을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대표 이미지 출처: Google Gemini(나노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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