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수용전념치료(ACT) 적용하기
서울재활병원, ‘제2회 장애인 가족 돌봄자 위한 수용전념치료 워크숍’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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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9월, 서울재활병원에서 주관하는 '수용전념치료(ACT for Caregivers)' 제2회 국제 워크숍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는 쉽게 말해 원치 않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에 전념함으로써 '심리적 유연성(Psychological flexibility)'을 길러나가는 치료 모델이다. 기존에는 암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통제가 어려운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적용되던 치료 기법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더 넓은 범위에서 적용되는데, 이를 한국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을 대상으로 열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워크숍에 3일 동안 참여하면서, 수용전념치료를 온 몸으로 배우고 느끼고 받아들였다. 정말 많은 이론과 적용, 실습이 있었다. 모든 세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걸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박사님의 촉진 과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 특히 청소년기 이후의 비장애형제자매들에게 수용전념치료적 접근이 정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워크숍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수용(Acceptance)'과 '전념 행동(Committed action)'에 대한 부분을 짧게 남겨 본다.
ACT에서의 '수용'은 내 생각과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걸 인정하는 과정이다.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자포자기하고 되는 대로 놔 두는 게 아니다. 상황은 바꿀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힘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다.
일반적인 예시를 하나 들어 볼까?
직장에서 일을 하다 실수를 했다고 하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쉬운 일 하나도 제대로 못하다니, 난 정말 무능력해.'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보통 '아니야. 난 능력 있어. 잠깐 실수한 것 뿐이야.'라고 스스로의 사고 회로를 바꾸라고 배운다.
하지만 이건 웬만큼 의지가 있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아니면 먹히기 어려운 방법이다.
이미 실수를 했는데, 거기에서 '아니야. 난 능력 있어.'라고 상황과 반대로 생각해봤자 어쩌겠는가.
그 상황에서 느낀 자괴감, 자책감 같은 감정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수용전념치료에서는 대신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쉬운 일인데 실수를 해서 내가 무능력하다는 자괴감이 많이 드네.'
이렇게 감정 자체를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충분히 느낀 뒤, 감정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이다.
또 나는 비장애형제자매로서 이런 생각이 종종 든다.
'장애가 있는 동생의 돌봄을 내가 별로 돕지 않는 것 같아서, 부모님께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어.'
이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보통 '아니야. 난 잘하고 있어.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지만 수용전념치료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신 '죄책감을 가져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감정과 싸우기보다는, 감정 자체를 인지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내가 이렇게 더 노력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없앨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이 힘든 이유는 대체로,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파도를 진정시키고 상황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비장애형제자매'라는 건 내가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다. 그냥 태어나 보니 그랬을 뿐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을 책임지려고 하면 힘들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환영하는(welcoming) 경험을 해 보기를 바란다. 이것이 수용전념치료에서 말하는 수용(Acceptance)이다.
ACT에서의 '전념 행동'은 내 가치에 따라 실천에 옮기는 행동을 말한다. 다시 말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불편하더라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그 감정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다음에는 내가 좀 더 건강한,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해야 한다.
위의 첫 번째 예시에 이어 생각해 보자.
일하다 실수를 했을 때 왜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을까?
그건 스스로가 삶에서 '유능함' 또는 '전문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스로가 유능한, 전문적인 사람이라고 느끼기 위해 할 수 있는 전념 행동에는 뭐가 있을까?
대표적으로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촘촘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장애형제자매로서의 예시도 이어서 생각해 보자.
나는 '내 건강'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다. 내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가족과의 만남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 충분히 내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든다. 이 죄책감은 내가 건강을 지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이지만,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건강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전념 행동에는 뭐가 있을까?
내가 신체 건강을 위해 찾은 방법은 운동이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잡생각을 하고, 몸도 더 건강해져서 가족을 보러 갈 체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최소 세 번 필라테스 또는 헬스를 하는 '전념 행동'을 한지 6년차가 되었다.
또 정신 건강을 위해 찾은 방법은 가족과 적당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전념 행동'을 했다.
여기서 맹점은, 전념 행동은 궁극적으로는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주지만 그 시작이 어렵다는 거다. 조금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나중에 하지 뭐.'하고 회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념 행동을 설정할 때 중요한 건, 어렵고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설정해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각 단계가 실천하기 쉽게, 잘게 쪼개져 있어야 한다. 또 에너지를 조금만 들여도 할 수 있도록 환경이 잘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헬스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날이 추워서, 더워서, 일이 많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피곤해서, 배가 고파서, 배가 불러서, 약속이 있어서, 어디가 아파서, 운동복을 챙겨오지 않아서, 운동복이 아직 마르지 않아서... 수만 가지 핑곗거리가 있다.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간다.'는 전념 행동이 쉬워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헬스장 이용권을 끊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날에 헬스 가방을 챙겨서 문 앞이나 차 안에 놓아 둘 수 있다. 만일 좋아하는 운동복을 입었을 때 운동을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긴다면, 그 운동복을 여러 벌 마련할 수도 있다. 운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최대한 많이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동을 가도록 격려해 줄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달력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운동을 간 날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도 좋다. 내 성취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을 가면 좋아하는 게임을 한 번 하도록 가족과(또는 스스로) 약속을 정해두는 것까지 하면, 전념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가 생기는 셈이다.
이처럼 전념 행동을 더 쉽게 지속하기 위해 참고하면 좋을 김경일 교수의 영상을 첨부한다. (11:14~)
https://youtu.be/KTIByn_rIWM?si=qLwcTcQ0Eg5TH_Gl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말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상황에 대처하는 내 행동이다.
수용전념치료에서 기억하면 좋을 두 가지를 소개해 보았다. 사실 나는 스스로가 비장애형제자매라는 정체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관련 직군에 종사하며 효능감을 느끼고 있고, 이외에도 비장애형제자매 지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지칭하는 '비장애형제자매'라는 용어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형제자매를 '짐처럼' 떠안고 살아간다. 그 모든 사람들을 속속들이 찾아내어 이런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지만 그게 어려우니 이런 글이라도 써 본다.
워크숍에서 박사님께 들었던 말 중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말이 있다. 약간 의역해서 공유한다.
'Even though they look like negative emotions, it occurs because it's related to something we care so much. So be more appreciative about yourself.'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찾아올 때면 기억하세요. 그런 감정이 드는 이유는 결국, 내가 무언가를(누군가를) 그만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그러니 (그런 마음을 가진) 스스로를 더 기특하게 여기고 보듬어 주세요.'
*대표 이미지 출처: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