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 이상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강태야. 너는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어야 돼. (...) 지켜주고, 챙겨주고 그러면 돼. 알았지? 엄마가 너 그러라고 낳았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어린 '강태(김수현)'에게 엄마가 한 말이에요. 강태에게는 자폐 범주성 장애가 있는 형 '상태(오정세)'가 있어요. 어린 강태는 '비장애형제자매'로서 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요. 또 형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워하는 감정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기도 해요.
'비장애형제자매'란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비장애인을 말해요. 사람들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가 겪는 어려움을 익히 들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비장애형제자매'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지요. 오늘 글에서는 장애인의 주변인 중에서도 가장 사각지대에 있는, '비장애형제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요.
여기 지적장애 동생 세모를 둔 비장애형제자매 동글이가 있어요. 동글이를 통해 한 비장애형제자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동글이는 7살이 될 무렵, 동생이 무언가 '다름'을 느껴요. 동생은 잘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도 왜 그런지 설명해 주지 않아요.
엄마는 매일 동글이와 세모를 데리고 치료실에 가요. 세모가 언어치료를 받는 동안, 동글이는 치료실 밖에서 혼자 놀아요. 유치원, 집, 치료실이 동글이의 세상 전부예요.
동글이는 초등학생이 됐어요.
"오늘 너네 집 가서 놀자!"
하지만 엄마는 동글이 친구들이 오는 것을 불편해 해요. 동글이도 왠지 모르게,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는 동생이 기저귀를 하고 침을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이 창피하기도 해요. 친구들이 동생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도 들어요.
"쟤네 동생 장애인이래. 그래서 집에 초대 못 한대."
동글이는 친구들이 수군댈 때마다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어요.
주변 어른들은 동글이에게 항상 말해요.
"그래도 엄마한테 동글이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동글이는 더 착한 딸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동생 몫까지 2인분을 해 내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동글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책임감'을 넘어선 '부담감'이라는 사실은 아직 알지 못해요.
동생은 언제 뇌전증(발작)을 일으킬지 몰라요. 그래서 가족과의 여행도, 외식도, 그 흔한 나들이도 해 본 적 없지만, 동글이는 아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어요. 이렇게 동글이는 어느새 어른이 돼요.
(*뇌전증: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나타나는 발작, 의식 소실, 행동 변화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뇌 질환)
동글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결혼을 생각하지만, 남자친구 집안에서는 부양이 어려운 동글이의 동생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주변에서는 형제자매의 장애 때문에 파혼을 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요.
"형제자매가 장애를 가진 게, 결혼 시장에서 매력적인 건 아니죠. 집안에서 반대해요."
직장 동료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요. 남자친구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해요. 하지만 동글이는 동생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까 불안해요.
어른이 된 동생은 여전히 혼자 걷지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말하지도 못해요.
"네가 책임지지 않게 할게."라고 부모님은 말씀하세요. 하지만 부모님도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동글이는 문득 부모님의 노후도 걱정이 돼요. 나이가 든 부모님께 짐을 지우고 싶지 않거든요. 성년 후견인 제도를 알아보고, 동생을 맡길 만한 시설에 대기를 걸어두면서 동글이는 오늘도 외로운 고민을 계속해요.
연구에 따르면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생애 주기 별로 심리적, 정서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 등 다양한 측면의 어려움을 겪어요. 특히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부모 및 또래 관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가장 큰 문제예요. '나는 잘하지 않으면 주목 받지 못해.' 이런 왜곡된 자아상은 성인기까지도 대인 관계 형성에 다양한 문제를 초래해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은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두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요. 하지만 장애형제자매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형제자매의 장애 정도는 어떠한지 등 수많은 조건에 따라 경험의 양상이 아주 달라요. 그래서 비장애형제자매들은 비슷한 상황의, 마음이 잘 통하는 서로를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이들은 유아기부터 적절한 심리적, 사회적 지원을 받는다면, 훨씬 더 훌륭한 사회적 자원으로 자라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를 위한 지원에 주력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비장애형제자매들은 복지 대상자들 중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요.
오늘은 이 글을 통해서 '비장애형제자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새로운 사실로 하루의 일부를 채워 보면 어떨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곁에는 2인분 이상을 해내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있어요.
2024년 5월 1일 뉴닉(NEWNEEK)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한 글입니다.
https://newneek.co/@lemon99/article/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