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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la Y Oct 21. 2020

승무원이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 (1)

뒤돌아 서지 말라, 그리고 이정표를 기억하라.

  귀를 때리는 알람에 눈을 뜨면, 소리를 해제한 휴대폰을 그대로 손에 들고 아직 채 떠지지 못해 찡그린 눈으로 액정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첫 번째 화면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한번 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날씨. 위젯 가장 위로 떠오르는 이미지에 따라 그날을 시작하는 감정에도 기복이 있다. 맑음에 기쁨, 약간 흐림에 안도, 흐림에 걱정, 안개와 강풍 그리고 눈과 비에 깊은 한숨. 비행기를 타는 직업을 선택하며 얻은 습관 중 상당히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이다.



  날씨는 비행에 있어 큰 역할을 차지한다. 물론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갖은 상황들이 있지만, 원초적 자연 같은 거대한 힘 앞에서는 결국 우리와 문명은 한낱 인간과 그 한낱 인간의 창조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일까, 오늘 내가 누구와 함께 일하게 될지, 어떤 다양한 수백의 승객들을 마주할지, 무슨 상황들이 생길지, 생각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통제를 벗어난 일들 투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살아가는 당신의 세계 안에서,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적으며, 또 당신은 얼마나 크시며, 또 나는 얼마나 당신에게 의존적인 존재인지 떠올리게 된다.



  사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다. 내 인생의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던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내 명함이 된 순간부터, 아니 내가 처음 인격적으로 당신을 만나게 된 날부터, 아니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아니 태초부터. 그러니 어쩌면 내가 적어 내려 갈 이 이야기는 사실 새로울 것이 하나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승무원이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 1 - 뒤돌아 서지 말라, 그리고 이정표를 기억하라.



  나에게 초심이란, 내가 있는 이곳이 당신이 허락하신 곳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면 참 많은 것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 악물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감당’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절대 내가 인내심이 뛰어나기 때문은 아니다.──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인내심과 지구력 없기로 소문난 ENTP다.


  그냥 그랬다. 당신이 주신 ‘이정표’라는 것을 기억하면 그 감사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었고, 반대로 그 감사가 사라지는 즉시 내게 주어진 모든 감사의 제목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정말 즐겁고 행복한 날들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거지 같은 날의 차이는 그것 하나였다. 당신과 함께하는 평강 안에서 나는 힘을 얻었고, 시선을 잠깐 돌려버리면 그 감사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돈벌이’ 따위가 되고 이렇게나 못 해먹을 짓이 따로 없었다.



  승무원의 삶을 살게 된 후로 주일 성수는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짬을 내서 예배를 나가고, 같은 믿음을 가진 동기들과 신앙적인 모임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스케줄도 맞지 않고 체력에도 부치니 집 앞에 가까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때우고’ 오거나 온라인 예배를 드리거나 어떤 날은 그냥 늘어져 버렸던 날도 생겼다. 그러는 동안 갈급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나중에는 견딜 만 해 졌고, 나름 살만하다고 느꼈을 즈음 이건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는 신앙생활에만 오지 않았다. 그 ‘초심’이 나의 모든 원동력이었으니 일상적인 삶에도 당연하게 문제들이 생겼다. 입으로 내뱉는 불평불만, 오롯이 내 생각과 감정에 의거한 판단은 나를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하게 했고, 그러다 보니 별 것 아닌 일에도 예민하게 화를 내기도 하고 많은 것들이 그저 싫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회생활을 하며 당연하게 여기는 변화일지 모르지만, 아니다. 적어도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인간에게는 아주 큰 일이어야 했다.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왜 행복하지가 않지, 왜 즐겁지가 않지, 왜 이렇게 싫지, 왜 이렇게 화가 나지, 정도로 생각했던 것에서 이것은 절대 ‘예수’적이지 않은 삶이라는 자각이 생기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농도를 조절하는 데에 있어 당연히 마인드 컨트롤 따위는 해답이 될 수 없었다. 일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인류애가 사라지는 것 같아.”



  어느 날 같이 식사를 하던 동료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동의하는 의미로 픽 웃었다. 그날 비행은 큰 이레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독 고됐다. 1시간이 넘는 타막 딜레이(Tarmac deley: 항공기가 타막에서 승객을 탑승시킨 채 딜레이 되는 것)로 승객들은 인내심을 시험받고 있었다. 도착지 날씨 탓에 쉽게 이륙할 수 없었던 것인데 당장 출발지의 날씨는 멀쩡하니 승객들에게 썩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임 사무장은 외국인이고, 그날의 승객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었으니 승객들의 원성을 직접 듣고 달래는 것은 나와 다른 한국인 크루의 몫이나 다름없었다. 승객들은 이미 화가 나 있었고, 상황을 설명드려도 연결 항공편 문제며, 회의 시간이며, 기타 여러 가지 중요한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에 화가 난 승객들에게 더 이상 이유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문제에 대해 ‘죄송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여기서 제일 내리고 싶은 사람은 나라고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택싱은 그러고도 반 시간은 더 나중에 시작되었다. 상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온도가 높으면 고령 승객의 실신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내 환경을 일정 온도로 유지시킨다. 문제는 더운 여름에 승객들의 옷차림이 가벼울 때 상대적으로 기내가 너무 춥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역시나 일정 고도에 이르자마자 여기저기서 콜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승객들은 하나같이 담요를 찾았다. 3시간 이하의 짧은 비행이었기 때문에 전 좌석에 개인 담요가 제공되지 않고, 요구하는 승객에 한해서 한정된 수량의 담요만 제공되었다.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담요를 열심히 나눠주는데, 비즈니스 클래스의 남는 담요까지 모아 왔는데도 담요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승객은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드리니 탐탁지는 않더라도 알겠다고 이해해 주었는데, 심지어 이미 담요를 받은 어떤 승객이 하나를 더 요구하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아니, 시간도 못 지켜, 담요도 없어. 추워서 감기 걸리겠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00 항공 서비스가 왜 이 모양이에요?”


“손님, 저희가 3시간 이하의 짧은 여정에는 개인 담요가 제공되지 않아서요. 지금 다른 클래스 남는 담요까지도 가져왔는데도 모자라서 못 받으신 분도 계시네요. 우선 제가 사무장님께 혹시 온도 조절이 더 가능한지 소통하고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불편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별 핑계가 많아. 내가 다시는 여기 타나 봐라.”



  물론 더 신사적인 승객분들이 더 많지만,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양반이다. 면전에서 된소리가 들어가는 욕을 들은 적도 있다는 동기들도 있었으니. 어쨌든 비행기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동료와 서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늘어놓으며 그렇게 식사를 했다. 적게 겪어 본 일은 아닌데도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이 지쳤다. 오늘 일 뿐 아니라 그동안 스쳐간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환멸이 쌓였다. 도저히 인간을 사랑할 수가 없다. 도대체 뭐가 예쁘다고 당신은 인간을 사랑하시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야 마음속에 제동이 걸렸다. 요즘의 나는 늘 그런 생각뿐이었던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말을 품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준비하며 기도했던 내용들도.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하기 힘든 일인지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동시에 그것이 당신이 원하시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그 양가감정 사이에서 한참이나 괴로웠다. 그리고 당신에게 항복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감사한 것은 언제나와 같이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나를 인격적으로 그리고 아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셨다는 것이다. 예배를 조금씩 다시 회복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예배가 회복되니 돌이킴과 그에 따른 마음의 회복은 놀랍도록 계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참이나 잊고 지냈던 첫 마음에 대한 것들이 기억되자마자, 내가 온전히 지금 힘든 나를 연민하는 것과 나의 정당한 분노에 집중한 나머지, 얼마나 당신의 생각에 관심 없이 살았는지를 깨닫고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매너리즘이라는 말 정도로 미화되는 나의 당신에 대한 망각과 타성은 생각보다 당연하게 내 태도가 되었고, 감사하게도 그럴 때마다 그것을 자각하게 하셨다. 회개하게 하셨고, 다시 당신을 ‘의식’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니 내가 한 것이라곤 그저 ‘회개’하게 하신 것을 따라 당신을 ‘의식’하면서 살려고 작정한 정도뿐일 것이다.


  회개는 다시 뒤돌아 서지 않는 것(no turning back)이라고 한다. 그렇게 뒤돌아 서지 않고 있으면 당신은 나에게 ‘가야 할 길’을 보게 하신다. 그것이 약속이고 이정표이다. 내가 있어야 할 그 위치에 있게 하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상황은 단순하게 정렬이 된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떠한 마음으로 왔는지, 당신이 나에게 원하시는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본질적으로 나는 누구인지, 그렇다면 ‘예수’적인 삶은 어떤 모습인지. 이정표에 포함된 그 수많은 의미들을 기준으로 다시 서면, 버티는 삶이 아니라 감사로 감당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사실 이것은 내가 해결해버린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 삶을 살아가는 내내 나는 모양만 약간 다른 채 같은 본질을 가진 문제들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언제나와 같이 해결은 당신이 하신다. 그것이 참 은혜이지 않은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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