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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la Y Oct 27. 2020

승무원이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 (3)

Coram Deo

"어우, 추워 죽겠네."

"죽겠네가 뭐야. 주께 있네. 추워도 주께 있네."


  아빠의 몹시도 거룩한 농담에 나는 슬쩍 눈을 흘겼다. 아재 개그야 뭐야. 하지만 그 안에 또 나름의 신념이 담겨 있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아빠는 편도 통근 거리가 2시간 이하로 줄어들지 않는 삶을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30년 넘게 살아내고 있다. 물론 타고난 체력과 성실함이 뒷받침해주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것 또한 타고났다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엔 아까운 부분이다. 아빠는 지금도 새벽 5시 30분이면 출근길에 올라, 회사 근처에서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그 삶의 태도를 아빠는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그리고 coram deo(하나님 앞에서)라고 표현했다. 


  그런 아빠가 내가 어린 시절 아파서 등교하기 싫다며 징징거릴 때마다 했던 말씀이 있다. 


"죽어도 학교 가서 죽어야지."


  반 장난으로 한 그 말에 어린 나는 얼마나 서글펐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픈지 모르면서!──물론 결국 그날은 결석을 했다.──하지만 지금 와서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며 생각하는 것인데, 실로 아빠는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하루도 출근길에 불만하지 않고, 하루도 입 밖으로 고된 날에 대한 불평을 내뱉지 않으며.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성실함으로.






 

  사회생활 도합 7년 정도를 겪으며, 그 성실함과 이를 위한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승무원으로 일하면서는 '영성, 지성, 체력, 이 세 가지 중 하나도 있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중에 제일은 체력이다.'라는 말에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수시로 바뀌는 고도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귀가 아프고, 앉을 새 없이 바쁜 업무에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프고, 그 와중에 타이트한 유니폼과 구두를 신고 서있는 몇 시간을 보내다가 신발을 벗으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바닥이 아리다. 나중에는 감각이 없기도 하다. 그뿐인가. 매번 바뀌는 잠자리에 며칠 새에 몇 번이나 바뀌는 시차, 그로 인해 구분되지 않는 낮과 밤까지. 그러니 day off 때는 다들 병원 투어를 하느라 바쁜 것이겠지.


"저기요, 이거 짐 좀 올려줘요."


  미안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선반 위로 짐을 올리는 일은 내 몫이 아니다. 물론 임산부나 고령의 노인, 어린아이, 키가 닿지 않아 선반 위로 짐을 올릴 수 없는 경우는 미리 부탁을 해오기도 전에 옆으로 가서 기꺼이 돕는다. 그러나 나보다 못해도 1.5배는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자기 짐을 올려달라는 경우를 만날 때는 정말 기가 차서 웃고 만다. 하지만 어떻게 매번 황당한 내색을 하며 거절하겠는가. 그러니 슬쩍 웃으며 한 번 다시 말하는 것이다.


"손님, 이건 저한테도 조금 무거워서요. 함께 도와주시겠어요?"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라,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적어도 한 번씩은 정형외과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 누구는 손목이 아파서, 누구는 허리 디스크가 생겨서, 누구는 무지외반증이 생겨서. 다양한 이유이지만 결국 일을 하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지병 때문인 셈이다.


  이렇듯 몇 문단에 걸쳐 열거한 이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휴식과 체력인데, 체력과 일의 관계란, 이것은 끊기 어려운 악순환의 굴레 안에 있다. 쉴 때면 운동은커녕 마냥 누워서 쉬고 싶고, 몸에 좋은 것을 찾아 먹자니 끼니가 불규칙한 데다가 너무 바쁘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체력은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니 일은 너무 힘들고.


  도대체 이 악순환은 어떻게 끊어야 하는 것인가.








  일이 정말 힘이 들어 체력에 부칠 때면 나는 가끔 아빠를 떠올린다. 상황도 어깨의 무게도 다르지만, 그 중압감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보다 앞서 많은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인생의 선배를. 그러면서 나도 그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나면 어쩐지, 정말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신 앞에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경건해지고 만다. 


  자기 관리를 위해 언제나 애를 쓰는 엄마도 일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게 마냥 크고 거대한 무언가만 있는 게 아니야. 그냥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것들에 충성하는 거지. 그건 우리에게 주신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것만 너무 다 찾아 먹으려고 하는 것도 '죄'일 수 있지 않을까. 관리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야. 영적으로는 물론이고 육적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사실 생각해보면 본인에게도 가장 좋은 거고."


  당신 앞에서, 당신을 경외하는 작고 작은 일상의 삶. 부모님이 노력하고 실제로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은 여전히 나에게 어려울 때가 많다. 실수할 때도 많고 그냥 놔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사랑스럽게 여기시는 당신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나도 매일 새롭게 다시 다짐한다. 먹고 싶은 것이라고 분별없이 먹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귀찮고 힘들지만 몸을 일으켜 운동을 하고, 그렇게 건강을 가꾸고 체력을 기르며 오늘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 내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을 배워간다.



  지금 내가 와플에 누텔라와 생크림을 바른 것을 너무 먹고 싶지만 참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이야기해도 되겠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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