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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la Y Nov 03. 2020

승무원이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 (4)

'블랙'에게 'Jesus' 필터 적용하기

  언급될 때마다 세간을 뒤흔드는 각계의 '블랙리스트'라는 말은 사실 승무원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 명단은 엑셀 파일이나 캡처 파일로 이름과 '블랙'인 이유를 함께 적어 놓은 목록으로 암암리에 전해지는데, 그 안에 쓰여있는 내용을 보노라면 참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부터 그저 엄격해서 '인간 매뉴얼' 자체로 일하는 것일 뿐인 사람까지.


  지금은 손님을 대하는 것도, 같은 동료들이나 선후배를 대하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신입 승무원이었을 때만 해도 '누구'와 함께하느냐는 몹시 긴장되는 문제였다. 스케줄이 발표되면 목적지는 둘째치고 다들 크루 명단을 보고, 기장부터 사무장, 그리고 같이 일하게 될 크루들의 이름들과 '블랙리스트' 명단을 함께 비교하느라 바빴다. 동기 채팅방에는 블랙인 누구누구와 함께 비행해 본 적이 있느냐, 어땠느냐, 주의할 점이 있느냐 등등 잔뜩 겁을 먹은 대화들이 오가기도 했다. 정말로 심한 경우는 줄줄이 병가를 내서 팀이 몇 번이나 바뀌는 마냥 웃지 못할 상황도 보게 된다.


  사실 이 '블랙리스트'는 기장이나 사무장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국적과 기수를 막론하고 '블랙'으로 낙인찍힌 자들이 존재한다. 우스갯소리로, 아무 이유 없이 브리핑 때부터 본인을 향한 눈초리가 심상찮다 싶으면 본인이 블랙이라는 것을 알고 행동을 조심하라는 말도 있다. 물론 이 정도 눈치로 스스로 언행을 삼가면 세상이 무척 평화로웠겠지만, 아쉽게도 보통 정말로 진한 블랙은 그런 자기반성을 하지 않더라. 어떤 익명의 아무개 씨는 본인이 블랙이라는 말을 듣고 오히려 자신의 악명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세상이 넓은 만큼 다양한 군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 어떤 이는 나의 맘에 드는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구는 도저히 정이 안 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용납되지 않는 경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고, 그 사람이 싫어서 그곳을 떠나도 다른 곳에서 그보다 더한 인간을 만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느 집단에나 다양한 개개인이 있으며, 나의 완고한 '싫어하는 포인트'는 그 누구에게나 찰나의 순간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완전히 자유할 수 있겠는가.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인간인 이상 이 문제를 완벽히 overcome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정말 환장하게도, 언제나 당신은 '사랑'을 명하신다. 세상에, 내가 저 인간 때문에 죽겠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요. 그러면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힘 말고, 내 힘으로 하는 거야."








  어느 정도 비행이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유독 깐깐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는 사람들과 함께 비행을 한 경험이 몇 번 있긴 했지만, 감사하게도 그때까진 그토록 '진한 블랙'과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크루 명단을 보고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느낌은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같이 비행한 적이 없는 이름인데 너무도 눈에 익숙한 탓이었다. 동기 채팅방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평점을 매길 수 있다면 아마 별점이 0.5도 안될 것 같은 악평만이 가득했다. 다들 고개를 내저은 횡포의 이유는 하나라고 했다. 한국인을 싫어해서.


  아니, 이것은 내 노력으로 어떻게 조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태생과 국적으로 인해 미움받는 일이라니. 당한 것도 없이 벌써부터 억울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병가를 내고 싶지는 않았고, 결국 나는 잔뜩 긴장해서는 출근길에 올랐다.


"그게 끝이야?"

"공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다음부터는 외우려면 제대로 끝까지 외워. 익숙한 대로만 외우지 말고."


  그리고 그녀의 괴롭힘은 브리핑 때부터 노골적이었다. 나는 20분간 진행된 브리핑 내내 질문 세례를 받았고, 그래도 미리 준비한 답변들이라 큰 문제없이 우선 답변은 하였으나 대답을 할수록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빼먹은 토씨 하나하나 잡아내어 덧붙이는 그녀의 열정이 대단했던 탓이다.


  그 열정이 브리핑으로 끝이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비행까지도 계속되었다. 검사부터 세팅, 그리고 비행 후 프러시저 내내 뒷 갤리로 와서 굳이 나를 확인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계속 핀잔을 주며 구박을 했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안 하면 감점 처리하고 부서 담당자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며.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 블랙 사무장과 비행하면서 너무 속상한 나머지 화장실에서 울고 온 적이 있다던 동료들의 기분이 어땠는지 아주 잘 이해될 지경이었다. 나는 속으로 당신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미쳤나 봐요, 왜 저래. 무슨 한국인한테 돈 빌려줬다가 떼 먹힌 적이라도 있나? 아니면 최악으로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혹시 한국인이었나? 아니, 그렇다한들 제가 지한테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나한테 저래요?'


  그러면서 한참을 분노를 끌어 모으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예전의 한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생 때 훈련받던 교회에서 간사님이 해주셨던 말씀이었다.


"Y,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누군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하신 말씀의 무슨 의미인 것 같아?"

"글쎄요. 그냥 크리스천이면 다 참아야 된다는 걸까요?"

"아니, 이건 의미 없는 복종이나 굴복의 의미가 아니야. 이건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대응이야. 당신의 어떠한 악한 의도도 나에게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대응."


  그 기억을 되짚으며 나는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분노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당신의 방법을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부딪쳤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두고 짧게 기도했다. 진짜 저 너무 억울하고 열 받고 어떻게든 한 번 되갚아주고 싶은데, 그게 당신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닌 건 아니까 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정말 인간적으로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실 들지만, 당신이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당신에게 구한다고. 지금 저에게 그 예수님의 시선 좀 적용시켜 달라고.


  그 뒤로 어땠는가 하면, 사실 상황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착륙 직전까지도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재미있게도 오히려 내 마음에는 여유가 생겨서 그녀가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 순간에 "알았어, 잘할게." 하며 웃어 보일 수 있게 됐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래, 저렇게 누군가를 이유 없이 싫어해서 저런 수고를 다하는 삶이 얼마나 피곤할까. 그녀도 미움을 버리고 얼른 내적 평화를 얻을 수 있길!


  이후 비행이 끝나고 공항에서 서로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 사무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쪽지를 건넸다. 그 쪽지에는 요한 3서 말씀을 따라 이런 내용을 썼다.


친애하는 사무장,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기를 바라.


  나는 아직도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뭔가 싶어 하며 쪽지를 읽더니 이내 당황과 놀람이 한데 뒤섞였던 얼굴. 나는 슬쩍 웃어 보이고는 이제 가보겠다며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려 나왔다. 사실 그 뒤로 그녀가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당하고 자신에게 그런 쪽지를 건넨 나를 우습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어쩌면 민망해했을지도 모르고, 그 후로는 조금 심경에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이전과 같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것은 이제 그녀의 몫이다. 단지, 나는 당신께서 나에게 주어주신 몫에 집중기로 한다. 글쎄, 나는 오히려 한결 마음이 가벼웠고, 그 일로부터 사람과 미움과 두려움의 문제에서 조금 자유 해지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나에게 누군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적극적으로 설득할 말이 없다. 사람마다 상처의 크기도, 경험의 폭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나 또한 물론 예전보다 많이 자유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동일한 문제에서 고뇌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이겨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고백은 당신이 바라시는 방향을 향해 나도 가고 싶었다는 정도이다. 그 마음을 기뻐하셨고, 도와주셨고, 나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예수님 필터를 적용시켜 주시더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자유함이 생겼다는 것.


  그 세상에서 가장 강한 대응을 잘 배워갈 수 있도록, 오늘도 Jesus 필터를 내게 허락해주시길 구하며. 그리고 나 또한 다른이에게 ‘블랙’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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