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라는 이름의 행복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고. 동물도 생명체로써 보호받고 소중히 여겨야지, 포유류는 털이 보송보송해서 보기에 귀엽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먼 존재였다.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동물을 집에 들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심리적으로 가까웠던 동물은 강아지 정도였다. 종종 친구네 집에 가면 만날 수 있었던 몇 아이들. 하지만 그 애들을 썩 좋아했냐 묻는다면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크기를 막론하고 우선 나에게 짖고 보았던 그 애들이 조금 무서웠던 것 같다. 멀리서 보자면 귀엽지만, 긴장감이 많은 녀석들은 나에 대한 경계심으로 마구 짖고, 사교성이 좋은 녀석들은 퍼스널 스페이스도 없이 다가와서 종을 막론하고 낯을 가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버거웠달까.
예전부터 엄마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셨다. 레이디와 트럼프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얌체 같은 두 마리 샴고양이를 보며, 엄마도 꼭 그렇게 두 마리 샴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고등학교 때 키우고 엄마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던 마당 냥이 부뚜막을 종종 떠올리며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하셨다.
응, 뭐 그렇군. 하고 생각하던 나에게 있어 고양이에 대한 인상이란? 조심성 많고, 낭창낭창 유연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강아지 다음으로 익숙한 포유류 정도. 대학 동기의 친구의 후배의 고양이가 임시 보호 중인 고양이와 사고를 쳐서 의도치는 않았지만, 치명적으로 귀여운 네 생명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대학 동기의 친구의 후배는 갑자기 늘어난 군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부담이 있었고, 소액의 생명 부담금 정도를 받고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더랬다. 공교롭게도 그 고양이는 샴이었고, 하얗고 까맣고 솜털 같이 귀여운 새끼들의 사진을 받아보며 예전부터 엄마가 했던 말들이 문득 생각이 났다. 그 길로 나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반쯤은 장난 삼아 엄마에게 “엄마 고양이와 아빠 고양이가 임시 보호 중에 불이 붙어 애가 태어났다는데, 다 거두기가 어려워서 입양 보낸대. 샴고양이인데, 내가 데려올까? 엄마 예전부터 샴고양이 키우고 싶어 했잖아.”하고 연락을 했고,──설마 정말로 그렇게 대답하실 줄을 몰랐지만──엄마는 키우고 싶다고 데려오자고 즉답을 하셨다. 그렇게 도진이(원빈 본명: 태어나자마자 너무 잘생겨서 그렇게 지었댔다)였던 레옹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엄마는 반대하는 다른 식구들을 항복시키고, 나는 하필이면 또 우리 집에서 아마도 제일 먼 곳일 것이 분명한 부산에서 무려 KTX를 타고 납신 아기 고양이를 서울역까지 마중을 나가 모셔왔다. 3시간 가까이 내내 얌전히 잠을 잤다던 작은 고양이는 익숙했던 상자에서 옮겨 나와 이동장에서 어찌나 삐약삐약 울어대던지 집으로 돌아오던 전철 안의 사람들이 다 이쪽을 쳐다봤다.
그렇게 만난 고양이는 어찌나 사랑스러운 동물이던지, 나는 그 근래에 잡아뒀던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그 고양이 옆에만 붙어서 한참을 살았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자길래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고양이는 하루에 16시간이나 잠을 잔다는 건 조금 늦게서야 알았다. 그러다가 일어나면 책상 뒤에 숨었다가 용기 내서 다시 나오면 금세 또 사람 등을 타고 올랐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어린 생물인 레옹이는 순식간에 우리 집의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었다. 레옹이가 오늘은 어쨌다, 레옹이가 오늘은 저쨌다. 처음에는 반대하셨던 외조부모님, 그리고 아빠도 어찌나 녀석을 귀여워하시는지, 대화 주제에서 레옹이가 빠지는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아빠가 엄마 품에서 함께 자던 녀석을 몰래 빼들어서 당신 품에 안고 주무셨다고.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유연한 동물. 사고도 많이 치고, 사람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엄마와 외할아버지를 가장 좋아하고, 말을 안 듣고, 자아가 강하고, 닭고기를 좋아하고, 나는 우습게 여기고, 하지만 나에게 시비를 걸며 노는 것을 좋아하고, 까까는 하루에 한 번 꼭 먹어야 하지만 두 번 준다 하면 왜 아까 줬는데 또 주냐고 의심을 하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는지를 잘 알고, 뻔뻔하고, 그게 또 귀엽고, 화분 모래를 사랑하고, 순하고, 미용을 하려 하면 등까지는 내어주지만 배는 절대 내어주지 않고, 응가를 하면 꼭 치워달라고 사람을 보채고, 집으로 향해 오면 발소리만으로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인지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인지 귀신같이 구분해내고, 나한테 혼나면 소리가 제일 잘 울리는 화장실에 가서 목소리 높여 시위를 하고, 문이 닫혀있으면 꼭 열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도 안 열어주면 발코니 창문으로 넘어오고, 밖은 무섭지만 궁금해하고, 가끔 방충망 밖에서 들이대는 참새가 무섭고, 많은 것이 무섭지만 많은 것이 궁금한 사랑스러운 고양이.
레옹이는 그렇게 나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그 애가 고양이이기 때문일까 다른 많은 고양이들에게도 왜인지 모를 애정이 생기게 되더라.
내년 7월이면 어느덧 그 애와 함께한 지도 꼭 8년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가 더욱 익숙해지고 그만큼 사랑도 정도 깊어지는 것이 감사하지만, 그만큼 앞으로 함께할 날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괜히 눈물이 먼저 나온다. 그러나 지금 그 슬픔을 미리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오래오래 네가 더 행복한 고양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고양이 별로 돌아갔을 때, 그 여행이 너에게 아름다운 추억이었노라 회상할 수 있도록,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 다짐한다.
하루 종일 너에 대해 이야기해도 모자라겠지. 존재만으로 이렇게 깊은 행복감을 주는 걸 너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