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주말이면 결혼식이며 돌잔치에 다니기 바빴는데 요즘은 부고 연락이 자주 온다.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12월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가 된 것 같다고.
이틀 후 다시 문자가 왔다.
ㅇㅇㅇ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고인 : ㅇㅇㅇ
빈소 : ㅇㅇㅇㅇ 장례식장 1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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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전라도 광주였다.
문자를 보고 재빨리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는 바빠 보이는 목소리로 멀기도 하고 오지 않아도 정말로 괜찮다는 말을 남겼다.
몇 년 전 멀다는 핑계로 조의금만 보냈던 친구의 부친상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 이후로
부모상은 웬만하면 참석해야겠다는 나만의 원칙이 생긴 후였다.
이번에는 꼭 광주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내려가는 기차표를 알아보니 다음날 까지도 모두 매진이었다.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친한 사람들끼리 연락이 닿아서 동네 아줌마들 넷이 모여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게 되었다.
광주송정역에 도착해 택시를 같이 타고 빈소에 가서
1~2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아줌마들 넷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부모님 얘기를 나누며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카카오 택시를 기다렸다.
날도 춥고 장례식장 앞이라 그런지
기분이 영 쓸쓸하고 찝찝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 넷의 조심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아직 난 부모상을 겪어 본 적이 없었기에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저기 입구에서 택시가 들어왔다. 한 명은 앞자리에 나와 나머지 두 명은 뒷자리에 탔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기사님께서
"아따 누가 가버렸시야~장례식장 이구마잉"
"푸핫"
우리는 그만 기사님 말투에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아 네.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이고메, 이를 워쩐다냐.
친구 아부지가 그라믄 가셔불었단 말이여잉.
다들 때가 되면 그런 거여.
우리도 언젠가는 다 가는 거여.
그게 다 자연의 이치 아니겄어.
근디 서울서까지 오셨당가잉?말투가 그라네?"
"아 예예. 그래서 광주송정역으로 가는 거예요."
"아아따 멀리서까지 와불었네잉.
근디 뭘이리 죄다 와불었어라잉.
한 놈만 대표로 와불지,
나머지는 그냥 욕 좀 묵고 돈만 보내불지 말이여잉.
오매, 허벌나게 친한 사이였던 것이여 ."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열심히 대답하고
뒷좌석에 나를 포함한 세명은
아저씨 말이 너무 재밌어서 계속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영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고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하니 기분을 풀어주신다고
괜히 더 웃겨주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광주는 자주 와봤냐잉? 자, 저짝이 먹자골목인디잉.
애호박찌개가 아주 끝내줘불어라잉.
다음번에는 일로 놀러 와갖고 꼭 한번 묵어보드라고"
수다가 한참 무르익는데 광주역이 보였다.
이제 내리려는데
아저씨께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까지는 신나게 웃겨주셨지만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당부를 하시려나 했는데
"아 근디 잊으믄 안 되는 게 하나 있당께.
내가 이렇게 재밌게 말해주고, 맛난 데도 알려줬응께,
카카오택시 별점은 ★ 다섯 개 주는 거 잊지 말아부러잉. 조심히들 가소잉"
"하하하 네네 감사합니다."
기분이 좀 풀어진 우리는 광주역 광장으로 걸어갔다.
12월이라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었다.
'12월 가장 예쁜 역'이라고 쓰여있었다.
"아직 시간도 여유 있는데 우리 사진 한 장 찍고 갈까?"
"그러자 나도 광주는 처음 와봐"
광주역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도 한 장씩 찍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이나 돼서 집에 도착하니 아이를 봐주다 잠드신 친정엄마가 나오셔서 물었다.
"지금 왔니?"
"응, 엄마 안 잤어?"
딸이 올 때까지 선잠을 주무신 게 틀림없다.
40살도 넘은 다 큰 딸이 안 와서
걱정에 못 주무시는 우리 엄마.
택시 아저씨가 열심히 기분을 올려 주셨건만
다시 왠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언젠가 나는 엄마가 없어서 잠 못 드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