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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Nov 07. 2024

내리실 문은

상담일기

온수매트에 온도를 올려놓고 자기 전 멜라토닌을 하나 먹고 눕는다. 잠이 오든지 말든지 누워 있다 보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어난다. 휴대폰 알람은 가끔 부재중 알람을 만든다. 여유 있게 출근하고 싶어서 분명히 알람을 맞춰두었으나 울리지 않는 알람을 대신 울릴 재간은 없다.


편안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잠이 잘 드는 편이다. 혼자 있으면 불면증에 약까지 먹어야 하면서도 친구들하고 놀러 가면 가장 먼저 잠자리에 들고 가장 늦게 일어난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못 깨어날까 봐 두려워한다. 직장은 당연히 제시간에 가서 도착해야 하는 건 당연한 소리지만 내 두려움의 기제에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깔린 것 같다. 


나에게 집이란, 가족이란 두 발 뻗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어찌 보면 평범하지만, 내 감정의 기제 그 밑바닥에 있는 근원이 그렇게 견고하고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출근을 하고 몇 주는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갈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고, 영어를 써야 하는 곳이 아니던가. 적은 월급이라도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게 삶의 활력을 주었다. 


오전 여덟 시 집에서 출발해 직장 근처 역에 내려 20분을 걸어간다. 오전 열 시 전에 쬐는 햇빛이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운동 겸 걷는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세 시 30분까지, 주 5일 일한다. 내가 여기를 고른 것은 돈보다는 시간을 얻기 위해서다. 퇴근 이후의 시간에 나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싶어서다. 


정해진 루틴은 없지만 보통 회사 근처 도서관에서 오후 여섯 시나 일곱 시까지 책을 읽고 일곱 시나 여덟 시 정도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동네를 뛰어다니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성경책을 읽는다. 하고 싶은 것에는 세상 사는 이야기, 공부, 여행, 글쓰기가 들어간다.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동생이 커밍아웃을 했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 있다는 게 외로워서, 내가 겪는 모든 일이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나의 감정이 주체가 안되어서 상담을 받는다. 


오피스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내리면 상담실에서 나오는 가사 없는 곡조가 복도에 왕왕 울린다. 다행히 민원을 거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문 턱에는 고정걸이가 있어 항상 열려있다. 들어가면 왼쪽에는 화장실이 있고, 마주 보고 있는 파란색 소파와 싱크대, 책장이 있다. 문 하나를 더 열고 들어가면 상담실이 나온다. 


나는 회사에서 끝나고 오면 20분 정도 애매하게 남는 시간이 있어서 파란 소파에 앉아서 냉장고에 있는 음료를 마시거나 뜨거운 물을 홀짝홀짝 마신다. 가끔 배가 고프면 오피스텔 앞에 있는 붕어빵이나 어묵을 먹으면서 기다린다. 상담 선생님은 항상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어요? 


어제 있었던 일이에요. 저는 왜 자꾸 일이 생기면 제 탓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1층 체육관을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11명의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가 들어가려고 할 때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방향키 버튼을 눌렀는데도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안에 아이들만 타고 엘리베이터가 한 층 위로 올라가게 됐다. 빠르게 아이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고 안에서도 다행히 다친 아이는 없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아이들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게 한 게 다 저의 탓 같더라고요. 제가 엘리베이터를 만든 사람도 아닌데 갑자기 닫혀버릴 일이 생길 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죄책감이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왜 나는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 것에 이리도 괴로워하는 것인가 싶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나보다 먼저 잡은 위층에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저는 분명히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 번 눌렀는데 문이 닫힌 거고요. 그리고 게다가 엘리베이터 앞에는 CCTV가 없거든요. 근데 이게 생각이 커져서 아 내가 결국 그만둬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닌데도 너무 크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거예요. 저는 왜 이럴까 계속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을 계속 나의 탓으로 생각하는 병에 걸려 있다. 그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존해 온 것이 익숙한 삶의 형태가 된 것이다. 이제야 나를 보호하고 경계를 세워가는 것에 대해 배워간다. 달팽이보다 연약하면서도 든든한 울타리가 없이 살아왔다. 


제가 계속 말하지만 레몬숲씨는 본인이 잘못하지 않은 일을 자꾸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신이 살아오면서 가장 첫 번째로 느꼈던 죄책감은 언제인가요?


이 말을 듣자마자 아빠가 던진 갈색 유리로 된 재떨이가 생각났다. 


내가 할머니의 괴롭힘에 못 이겨 엄마에게 처음으로 할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던 날. 아빠는 나에게 갈색 재떨이를 던지며 저년은 우리를 이혼시킬 년이라고 말했다. 내 나이 7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때의 아빠의 목소리, 아빠를 막아내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엄마는 왜 애한테 그러냐면서 내 앞을 막아섰고, 분에 찬 아빠는 청소기를 들고 나를 내리치려 했다. 아빠는 다행히 엄마를 좋아하지만 울타리가 되어주진 못했다. 나는 엄마가 힘들어할 때마다 내가 태어나서 엄마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감정 표현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어린 내가 엄마를 지키겠노라고. 집안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인생이 아닌데, 왜 삶은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어린 소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망망대해라는 단어가 나에겐 딱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인생 기차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줬다. 돌아가고 싶은 역,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역, 현재 내가 있는 역에 대한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다. 


딱히 돌아가고 싶은 역은 없었다.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 그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언제나 '지금 이순간'이 가장 좋다. 그래도 굳이 굳이 떠올리자면, 신학을 공부했을 때였다. 일하고, 교회사역하고, 공부하면서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일하면서 만나는 학생들도, 그들이 나로 인해 삶이 변화는 것을 보는 것도. 다 좋았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역은 그가 나에게 반지를 던졌던 그날이다. 그때 헤어졌어야 하는데. 나는 왜 그의 고통스런 어린시절을 듣고는 내가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했을까. 내 마음을 이용할 사람인 것을 왜 못알아봤을까. 왜 나는 나를 지키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했던 것 만큼 나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내가 있는 역 이름은 나는 왜 태어났는가역이다. 내 인생의 키워드를 찾고 있다. 어른들은 나를 어리다고 하지만, 나는 조급하다. 회사에 들어가면 중간관리자 정도가 되는 나이가 되었고,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도 나를 회사에 갈아 넣으며 일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계를 위해서 뭘 할 것인가.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를 알려면 과거에서부터 나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과거를 돌아봤다. 나 스스로도 좋아하고, 남들도 나에게 너 그거 잘한다고 하는 게 뭘까. 


나는 모든 것에 글쓰기를 적었다. 그리고 치유의 공동체를 적었다.

함께 글을 쓰고, 그 글을 엮어 책으로 내고 싶다. 상실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이 있다. 모든 인간의 근원인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고 글을 매개로 하여 각자가 살아나는 경험을 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나의 관심은 트라우마에 있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자라나면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싶고 그걸로 돈을 벌고 싶다.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실제적인 활동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다시 한 줄을 적었다. 


상담심리대학원. 


최근 SNS마케팅 관련 강좌를 들었다. 유튜브와 쇼핑몰을 활용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강의였는데, 강의를 다 듣고 나에게는 그래서 돈 말고 그게 남는 게 뭔지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한 줄을 적었다.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때 성취감을 느낀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의미 있는 일을 통해서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말을 한참 듣더니 두 가지 키워드를 말해줬다. 열정배움.


그래. 어차피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야. 그럼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매번 선택의 기로 앞에 서고 삶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항상 애를 써서 겨우겨우 답을 찾으면 또다시 겨우겨우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결국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 그거면 또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  


(딩동) 

이번 정류장은 나는 왜 태어났는가? 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직 없습니다. 

This stop is identity, identity. There is no door to get off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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