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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숲 Oct 13. 2024

그것은 좀 이상한 느낌이었다.

커밍아웃

이혼을 하고 나서 삶의 많은 부분이 초연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무언가를 애쓰려고 할 때마다 내 마음에는 행동에 제동을 거는 어떤 장치가 생겨났다.


상실과 애도를 경험하는 것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삶에 어떤 저주가 끼어 있어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는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하게 일어난다. 


인생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불여우 같은 여자가 남자를 잘 만나서 시집가서 살기도 하고, 세상 똑똑할 것 같은 여자가 이상한 책임감으로 남자에게 등쳐 맞으며 살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사람 보는 눈을 갖는 게 세상 제일 좋은 능력 같기도 하다.


나는 인간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인간을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 왜 나에겐 아픈 일들이 많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나 내가 인간을 의지하면 그 인간이 나를 좌지우지하려고 하거나 떠났다. 신앙을 가진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게 그냥 하나님이 나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식인 것 같다.


나는 고통 중엔 동굴에 들어간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감각이 어색하기도 하고 딱히 기대고 싶은 사람도 없다. 친구들은 다들 시집가고 애 낳고 살고 내 나이가 되면 웬만한 또래들은 가정이 있다. 다들 자기들 먹고사는 게 가장 힘든데 또 고민을 들어줘봤자 얼마나 더 의지할 수 있겠어 싶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가 아니던가. 남편과 아내가 있어도 인간 존재이기에 가진 근원적 외로움이 있지 않은가.


최근에 가슴에 대못이 박혀 심장이 조각나 찢어지는 것 같은 일이 있었다. 글을 쓸 힘도 사라지는 고통이었다. 일상이 무너지고 귀찮아졌다. 하나님. 제가 그것 만은 지켜 달라고 기도 했잖아요. 하나님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날 나는 바닥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이거 까지냐고. 제발 그를 살려 달라고. 제발 어디까지냐고. 기도하는 게 의미가 있긴 한 거냐고. 하나님이 진짜 좋은 아버지가 맞냐고. 정말이냐고. 내가 기도할 때 내 마음은 불로 지져지는 것처럼 뜨겁고 아팠다. 그리고 세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주님의 것이다.

동생은 주님의 것이다.

내 부모는 주님의 것이다.


인간의 결핍과 잘못된 신념체계가 만나면 신흥 종교가 생겨난다. 사랑하기 어려운 나의 뿌리들에 대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죄책을 갖지 말아야 할 것에 죄책감을 갖고, 책임을 느끼지 말아야 할 것에 책임감을 느껴 왔다. 내 안에 깨어 나오지 못한 박스에 갇혀 괴로워했다. 좀 더 사랑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런데 그 박스는 나의 결핍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 박스를 깨면 된다. 왜 그러한 반응이 나에게 있었을까 조용히 나를 들여다본다.


나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타인은 그것을 족집게처럼 느낀다. 그 감각이 타인이 나를 흔들게 하는 빌미였다. 그 빌미를 준 것이 나이기에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한 나의 책임이 있다. 그게 바로 내 인생의 경계를 지키지 못하게 만든 의도치 않은 나의 습관이었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다. 자신의 선의와 상관없이 악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죄성은 기가 막히게 타인의 무너진 경계선을 침투해 와 상대방을 흔들고 비난하고 통제한다. 거의 무의식적이다.


언제나 나의 일은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의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타인은 타인으로 사랑하면 될 일이다.


나를 끝까지 데리고 살 사람은 나야. 그냥 잘 살면 돼.


나는 내 감정이 감당이 안되어서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동생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상담 선생님은 나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에 너무 큰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결혼을 하기까지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결정하기까지는 자신의 결정이었지만 

그런 사람을 결정하기까지 레몬숲씨의 삶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봐야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레몬숲씨의 환경과 기질과 여러 것들에서 오는 것인데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이건 부모님의 잘못인 거죠. 자식은 부모에게 한없이 사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예요. 그 방향이 반대가 되면 인생이 너무 힘들어져요. 자신 스스로 부모님이 되려고 하지 말아요. 동생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동생이 외로운 게 레몬숲씨의 잘못인가요?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지금 레몬숲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슬퍼할 기회를 주고, 동생을 동생으로서 수용하는 것이에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생겨난 것은 그 고통으로 눌러앉아 죽으라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는 인생이 은혜다. 





나의 브런치가 생겨나게 한 두 권의 책을 다시 손보고 있다. <신혼이 없었는데 돌싱이 되었습니다>와 <상처 입고 조금씩 아름다워져 간다>이다. 이전보다 나는 많이 강해졌고, 그때는 이름 짓지 못했던 많은 감정 기제들에게 이제는 명명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많은 일들에 결국엔 이름 붙여질 날들이 올 것이다. 감정을 명확하게 직면할 수 있는 힘이야 말로 강함이 아니던가.


그저 주님의 긍휼 만을 구하며 저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 저에게 살아갈 힘 주심을 믿습니다. 

인생은 먼지에서 태어나 먼지로 갈 뿐입니다. 주님의 크심을 더욱 신뢰하며 제가 해야 할 것들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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