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높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
상대방의 좋은 측면을 보려고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어떤가? 이런 장점을 가진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된다.
그에게 무릎 꿇고 빌었던 그날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그는 나에게 "네가 진짜 폭력이 뭔 줄 아냐."라고 말했다. 울다 지쳐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위장이 다 타 들어가서 명치가 몸 밖에 있는 것 같고, 편도가 말라가는 게 느껴질 때, 그는 나에게 "네가 울면 칼로 널 찔러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헛구역질을 하고 화장실 바닥에 위액까지 게워냈다. 인생이란 우습다. 결혼하고 석 개월 만에 이 모든 상황이 생겨났다는 게.
신혼여행 첫 날 그는 자고 있는 나에게 캐리어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성산일출봉을 가기로 했는데 내가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 못한 게 화가 난 것이다. 그리고 신혼여행 셋째 날 그는 나에게 이혼하자고 말했고, 그 이후 일주일 마다 한번씩 나에게 이혼을 하자고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그가 이미 한번 혼인신고를 했던 사람인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목회자이고 사회복지사다. 그는 자신이 가진 선한 이미지로 나를 속였다. 나는 그것이 폭력인줄 모르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건 나 자신이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죽어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이 없으시니 직접 그를 만나러 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매일 약을 모았다. 나는 죽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책임지려 했다.
울다 실신하고 자다 깨다 자다 깨면 그는 주방에 서서 조용히 배달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근데 난 그런 그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겼었다.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그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는 끝까지 내 탓을 하고는 결국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건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깨려고 사탄이 속이고 있는 것이고 속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거냐고 했다. 그는 결국 사탄까지 탓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 일까. 그는 천국에 갈까? 그가 있는 천국이 천국일까?
이제 와서 욕 한마디 하지 못한 게 너무 화가 나고 속은 것도 화가 나고, 이런 나 자신이 너무 화가 난다. 이용 당하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그를 이해하려 했던 것, 그만큼의 이해심을 정작 나 본인 자신에게는 베풀지 않았던 것. 그는 분명 잘 훈련된 개를 원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고. 쓰고 또 써서 내 마음을 치유하려 애쓰지만 나르시시스트 망령은 실체가 없으나 어디에나 있어서 헤어지고도 난 여전히 그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소리에도 놀라서 깨고 윗 집에서 쿵 하는 소리에도 놀라서 일어난다. 거실에 나오면 아무것도 없음에 다시 허탈하고, 씁쓸한 마음을 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설치한 텐트의 문을 닫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베개를 끌어안는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다. 혼인신고 상세란에 있는 그의 주민번호가 사라져 있으면 좋겠다고. 그가 죽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법적으로 남이 되었는데 왜 남의 주민번호 13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는 걸까? 화가 난다. 언젠가 그가 나를 찾아오지는 않을까. 내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사회복지사 공무원이 돼서 나의 정보를 다 찾아보게 되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곤 한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 같은 건 의미가 없을테니까. 그는 거짓말을 아주 잘하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나는 왜 바보 같이 협의를 했던 걸까. 독하게 마음먹고 소송을 했어야 했었는데. 그때 나는 너무 착했고 지쳤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그를 빨리 끝낸 것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그를 더 빨리 끊어내지 못한 것, 그를 불쌍히 생각한 것, 그의 영혼을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용서란 무엇일까? 하나님은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하나 깊이 깨닫게 된 것은 성경에 나와 있는 '악의 사람들'은 정말로 사실이구나. '지옥'은 정말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거짓 자아에 갇혀서 또 누군가에게 기생하며 살아가겠지. 부디, 그의 그 거짓자아를 그대로 느끼며 고통스럽게 살다 가길 바란다. 그가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나에게 있어 최고의 용서가 아닐까. 난 메시아가 아니다. 언제쯤 무덤덤해질 수 있을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나는 타인이 원하는 삶에 질질 끌려 다니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응적이지도 모질지도 못해서 경계선 없는 집 없는 달팽이처럼 살고 있었을 것이다.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초연해지는 것 같다. 슬픔이 고여 있긴 하지만 그것이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 거라고 믿는다.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주세요.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그리고 제가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
(라인홀트 니부어, 평온의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