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곳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레야가 친구관계 때문에 좀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포르투갈에서 다녔던 학교에는 너무나도 잘 맞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땐 국제학교가 아닌 바이링구얼 학교였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아이가 같은 반에 4명이나 있었다. 그것도 여자 아이들 넷. 그 넷과 포르투갈 친구 한 명까지 다섯 명은 늘 같이 노는 친구들이었고, 그중 영국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감성이 풍부하고 세심하고 예민한 기질인 딸아이와 비슷해 둘은 특히나 단짝이었다.
그에 비해 이곳 학교는 국제학교라고는 하는데, 레야와 쿠웨이트에서 온 남자아이 한 명을 제외하면 반 아이들 모두 베네 현지 아이들이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스페인어로 논다고 했다. 이제 몸으로 놀기보다는 서로 비밀 이야기도 하고 수다도 떨며 노는 게 더 즐거운 나이의 아이들이다 보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친구와 친해지는 건 쉽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같이 놀기는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만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힘든 것 같았다. (친구들은 영어를 듣고 이해하지만 아직 스피킹이 자유롭지는 않고, 레야는 스페인어를 알아는 듣지만 스피킹이 안된다.) 아이는 매일같이 포르투갈에 있는 친구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런 딸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였다. 하나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친구들은 변함없이 친구라는 걸 가르쳐주는 것.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있는 아이의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게 해 주었다. 시차가 있어서 아이가 학교 다녀오면 그쪽 친구들은 잘 시간이라 자주 할 수는 없었지만 간간히 영상 메시지도 주고받고 시간을 맞춰 영상 통화도 했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할 얘기가 있을까 싶은데 한 번 통화하면 한 시간씩 해버려 시간을 미리 정해주어야 할 정도였다. 그 시간은 아이에겐 나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으리라.
두 번째는 이곳의 친구들과 최대한 빨리 친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명씩 우리 집에 초대해 놀게 해 주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서 계속 친구들을 더 초대하는 바람에 한동안 매주 우리 집엔 손님들이 왔었다. 아이 친구만 오는 게 아니라 때로는 친구 엄마, 친구의 베이비시터, 때로는 동생까지 동반한 손님들이다 보니 친구를 초대한 날엔 청소와 간식 준비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지만 이렇게 따로 만나고 나면 아이들이 조금 더 친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세 번째는 친구도 중요하지만 너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아이의 학교 생활 전반을 좌우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학교에 가고, 학교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열심히 활동하자고 했다. 혼자든 친구와 함께든 학교에서의 모든 시간을 충실하게 재밌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약속하고 난 매일 등교 때마다 아이를 안아주며 응원했다.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새 학교에서의 한 학년이 끝난다. 다행히 아이는 이제 이 학교에 적응을 잘한 것 같다. 더 이상은 친구가 없다는 말도,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쉬는 시간에 혼자 있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친한 친구 이름을 물으면 망설임 없이 두 세명의 이름을 말하고, 친구들이 비밀 클럽에 자기도 끼워줬다며 설레하며 학교를 간다.
어제는 아이가 마법 물병을 만들었다. 비밀 클럽 활동에 필요한 거라고 했다. 금요일에만 장난감을 들고 갈 수 있기에 내일은 학교에 못 가져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가져오랬단다.
"학교 규칙이랑 엄마 말보다 친구 말이 더 중요해?" 물으니 1초 망설임도 없다. "더 중요해. 비밀 클럽이 더 중요하거든."
엄마 말보다 친구 말이 더 중요하단 말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벌써 그럴 때인가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뿐이다. 그래도 이제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있구나 싶어 안도하며 아이 가방에 든 마법 물병을 못 본척하며 학교에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