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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Mar 19. 2024

설마, 우리 어머니가 치매? 한밤의 대 환장 쇼.

삼월은 겨울옷을 입기에는 생각보다 덥다. 봄옷을 입기에는 몹시 춥다. 겨울옷을 입고, 더울 것이냐, 봄옷을 입고 추울 것이냐가 늘 문제다. 나는 봄옷을 입고 춥기를 택했다. 날씨가 계속 따뜻해질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겨울옷을 모두 세탁했기 때문이다. 

 가족은 서로에게 잘 전염된다. 이를테면 내가 옷을 가볍게 입으면 다른 사람들도 옷을 가볍게 입는다. 어머니도 그랬다. 어머니는 금요일 날, 블랙야크에서 나온 빨간 등산복을 입고 보약을 주문한다고 구포시장을 두 번이나 다녀왔고, 토요일 주말에는 강서구 밭에도 감자를 심으러 갔다. 며칠 동안 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물론, 강서구 밭에는 온 가족이 다 참여했다. 작은 땅이지만 기계가 없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일은 금방 끝났지만 어머니는 좀처럼 밭을 떠나지 않았다. 일이 끝나도 무언가 일을 찾아냈다. 

 다음 날 일요일에는 가족 모두가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오후에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러 갔다. 큰형과 아버지는 자동차에서 대기하고 어머니와 내가 일주일 치 분량의 식료품을 구매했다. 어머니는 오늘따라 걷는 것이 불편했다. 발을 저는 것은 아닌데 몸이 느려진 것 같았다. 그리고 늘 사는 과일을 사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7시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더니 구포시장에 가는 버스 시간표를 물었다. 

 "지금 구포 시장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냐?"

 "30분 뒤에 오는데, 지금 구포 시장에 간다고요? 너무 늦었는데."

 나는 방을 나오면서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현관에서 어머니가 빨간 등산 복을 입으시고 신발까지 신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가리키며 어머니를 만류했다. 큰형도 방에서 나왔다. 

 "엄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구포시장 간다는 거예요?"

 "그래. 맞다. 지금 구포시장 가면 다들 문 닫았다."

 잠자코 있던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한약 찾으러 가야지."

 어머니가 힘 없이 말했다. 

아버지는 매우 놀란 얼굴로 역정을 내셨다.

 "지금. 이 양반이 무슨 소리 하고 있노! 한약을 두 첩이나 지었는데 뭘 또 한약을 맞춘다는 거고!"

  "0봉 떡 방앗간에 아침에 한약을 맡겨 둬서 지금 찾아야 한다고요."

 이번에는 온 가족이 다 놀랐다. 사실 관계를 따지자면, 첫째로 0봉 떡 방앗간은 집 근처에 있다. 30 킬로미터 떨어진 구포시장이 아니다. 둘째로 떡 방앗간은 한약이 아니라 떡을 취급하는 곳이다. 나는 떡 방앗간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와중에 떡 방앗간에서 한약도 취급하는지 몰라서였다. 나이 든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집 주소를 이야기하고, 어머니가 혹시 떡 방앗간에 한약을 주문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무척 황당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주머니는 한약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또 혹시 몰라서 네이버 지도로 0방 떡 방앗간과 상호가 비슷하면서 한약을 취급하는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하지만 비슷한 상호도 없었고 글자 수도 두 글자로 된 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탄식의 한숨을 내뱉었고, 큰형도 절망스러운 눈빛을 했다. 나는 머릿속에 여러 개의 생각을 빠르게 했다. 그러다가 오후에 어머니가 마트에서 힘들게 걸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몸이 무척 아플 때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체온계가 없더라도 알 수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 어머니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환각 증세가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사러 갔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체온을 빠르게 떨어뜨리는데 효과적인 약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뛰어나가 편의점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과 쌍화탕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예 몸 져 누워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잠시 깨워서 약을 드렸다. 어머니는 그 약을 드시고 빠르게 회복하셨다. 

한 시간 뒤에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더니,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와 큰 형도 그 광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에 부모님이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시면 단순히 고열로 인한 환각 증세가 아닌지 체온을 재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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