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바르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왜 나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왜 인간성을 지키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 왜 이기적인 행동 대신 이타적인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삶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물음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 인물을 예로 들어보자.
한때 모든 것을 마음대로 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뛰어난 이문 감각으로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고위 공직자들과 교류하며 권력까지 손에 넣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으며, 겉으로는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했다. 누가 보아도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이 남자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협박과 폭력을 일삼았고, 심지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범죄 행위는 부와 권력으로 철저히 은폐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삶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않았지만, 인생은 무미건조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마약에 빠지거나 여성 편력으로 남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삶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며 살았다.
과연 그의 삶은 정상적일까? 어떤 이는 그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그의 공허한 모습을 보고 동정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는 행복해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 모호한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의 삶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뇌과학자의 입장에서 그의 뇌를 분석한다면, 과학자는 아마도 그의 도파민, 엔돌핀, 세로토닌, 옥시토신 수용체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기쁨과 즐거움, 공감을 느끼는 능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종교인의 시각에서는 그의 영혼이 망가져 “영혼의 한센병”에 걸린 것으로 평가할지도 모른다. 죄를 지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슬픈 장면을 보아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는 영혼이 마비된 것과 같다.
영혼의 한센병.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인간으로서 선한 행동을 실천하고,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며, 나쁜 행동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영혼의 한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도덕과 윤리는 단순히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내면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이다. 나쁜 행동은 단기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인간답지 못한 존재로 만든다. 반면, 선한 행동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삶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