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문장에선 한자어도 신선하다.

by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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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려운 예술 활동이다." 글쓰기를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는 정말 어렵다. 글자 하나, 토씨 하나 쓸 때마다 예술작품을 창조할 생각하면서 상투적이지 않은 단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자라는 것이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일 텐데, 글쓰기야 사람들이 이해할 정도면 되지 예술까지 생각해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 글쓰기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만큼 쉬워진다. 단어를 선택할 때 상투적인지 신선한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무조건 쉬운 단어만 골라 쓰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쪽이냐면 글쓰기를 예술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막상 쓸 때는 대충 쓰려는 쪽이다. 나는 나무늘보와 겨룰 만큼 게으른 인간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김훈 작가 님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단어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잘 쓰지 않는 한자어, 즉 사어도 잘 쓰면 문학적 용어가 되지 않을까? 옛날에 상투적으로 쓰던 한자어도 쓰던 사람이 다 죽었으면 이제 신선하지 않을까?

김훈 작가 님의 글을 읽다가 보면 빠져든다. 시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공학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어떤 문장은 수많은 미로와 함정을 조심히 건너듯이 서서히 뻗어나가는 매력이 있다. 작가 님의 글에 빠지다 보면 묘한 감동을 느끼고 작가 님의 글을 다 이해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착각일 수 있다. 작가 님이 쓰는 글은 한자어가 많은데 요즘에 쓰지 않는 단어들이라서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면 오해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작가 님의 글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을 때는 여유롭게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는 수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김훈 작가 님은 "무참하다"라는 표현을 잘 쓰신다. 일반적으로 무참히라는 표현은 무척 끔찍하고 잔혹하게라는 뜻이다. 나는 무밭에서 농부가 무를 베는 모습을 상상했다. 둘 다 아니다. '무참하다'의 뜻은 몹시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뜻이다. 치매하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매'와는 상관없는 뜻이다. 여기서 치매하다는 기억력 감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웃으며 꾸짖는다는 표현이다. 사자가 늑대를 보며 치매했다. 지나가던 소가 대통령을 보고 치매했다라고 하면, 비웃으며 꾸짖었다는 뜻이다.

무참하다, 치매하다는 우리가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신선하다. 김훈 작가님의 글에서 무참하다는 표현 대신 부끄럽다, 창피하다를 쓰거나 치매하다 대신 비웃으며 꾸짖었다고 쓰면 말맛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주관적 느낌이니깐 다른 독자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순수하게 의사소통 측면에서 보자면, 부끄럽다, 창피하다고 쓰는 편이 독자에 이해는 좋을 것이다. 대신 부끄럽다, 창피하다는 표현은 일상어라서 신선하지 않다. 그래서 무참하다는 표현이 끌리는 것 같다.


학교에서 작문을 배울 때, 어려운 한자어를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배운다. 나도 오랫동안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한자어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아마도 문학적이지도 않고 딱딱하면서 어렵기만 한 단어를 쓰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글을 읽었을 때 신선한 느낌이 든다면 외계어를 쓴다고 뭐가 대수겠나. 틀을 깨는 것이 문학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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