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돈다고, 나도 늙나?

by 김광일

해가 바뀔 때마다 으레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정말 한 살을 더 먹은 걸까?' 섣불리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거울 속의 나는 너무도 빤빤하고, 여전히 젊음의 잔상을 붙잡고 있는 듯하다. 이 낯선 괴리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새해가 되면 으레 한 살을 더했다고 치부하지만, 그 '나이 듦'의 선언은 너무나 관습적이고, 심지어는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생일이 되면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것처럼 기정사실화되는 것처럼 말이다.


논리적인 뇌를 가진 인간으로서, 이 사회적 약속은 늘 납득하기 어렵다.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온전히 돌았다는 우주의 사건일 뿐이다. 나는 그저 이 아담한 우주 여객선, '지구'에 몸을 실은 한 명의 승객일 따름이다. 내가 태양을 돈 것도 아니요, 내 몸속 시계가 일제히 정시에 '땡' 하고 한 살을 추가한 것도 아니다. 지구의 공전 주기를 나의 노화 속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쩌면 지구 중심적인 오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화성 이주를 꿈꾸는 이들의 농담처럼, 만약 우리가 687일이 한 해인 화성에서 살게 된다면, 우리는 687일마다 한 살을 먹는 것으로 계산해야 할까? 그렇게 되면 화성 이주민들은 지구인보다 훨씬 '느리게' 늙는다는 착각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물학적 노화는 여전히 지구에 있을 때와 동일한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질문들은 우리에게 나이 듦이 지닌 사회적 허점을 드러내게 한다. '나이'란 단지 사회적 편의를 위해 설정된 공통의 잣대, 일종의 달력상의 징표일 뿐이다. 우리는 획일적인 '한 살 더 먹음'이라는 관습 앞에서, 각자의 고유한 늙음의 속도를 무시하고 산다.


주변을 둘러보라. 어떤 이는 환갑을 넘겼음에도 얼굴에는 삼십 대의 청년 같은 활력이 넘치고, 또 어떤 이는 실제 나이 마흔인데도 삶의 고단함이 새겨진 듯 환갑처럼 보인다. 이 극명한 대비는 시간의 경과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는 단지 사회적 관념이 만든 숫자일 뿐, 내 몸과 정신의 실재를 담아내지 못한다.


결국, 늙음의 본질은 달력이나 공전 주기 따위의 외부적 시간 측정 단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나'라는 개별적인 우주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은밀하고도 주관적인 생물 화학 반응이다. 과학은 이 은밀한 반응의 실마리를 '텔로미어'에서 찾는다. 염색체 말단에 자리한 이 반복 DNA 서열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짧아지면 세포는 스스로 사멸한다. 이것이 바로 생물학적 노화의 핵심 기제다.


텔로미어의 짧아지는 속도는 개인차가 크다. 유전자는 그 속도의 절반을 결정할 뿐, 나머지 절반은 전적으로 우리의 '삶'이라는 우주선이 빚어낸 항해의 결과물이다. 끊임없는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 수면 부족, 운동 부족 등은 이 '젊음의 실타래'를 가차 없이 풀어헤치는 주범들이다. 반면,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이고 신선한 사고방식, 지적인 호기심, 건강한 식습관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수호하고 세포의 활력을 연장시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결국,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스스로 늙었다고 한탄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고 내 생체 시계가 갑자기 폭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텔로미어를 어떻게 대우했는가, 나의 삶을 '젊게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는 내부적 성찰이다.


젊음이란 추상적 숫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실전 자세다. 매일 아침 건강을 위해 땀 흘리며 운동하는가? 새로운 지식에 도전하고 책을 읽으며 뇌의 젊음을 유지하는가? 불필요한 걱정으로 마음의 주름을 만들지 않고,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기쁨을 찾아 나서는가? 이 모든 능동적인 행위들이야말로 '나이 듦'이라는 수레바퀴를 멈추거나 혹은 역회전시키는 진정한 동력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들, 그것은 지구의 일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가장 특별한 행성의 주권자로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가꾸고, 나의 삶을 얼마나 즐겁게 영위할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나이 듦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언정, 늙음의 속도와 질은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니 새해를 맞이하며 '나이 먹음'을 탄식할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젊게 살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삶의 매 순간이 나의 나이를 결정하는 진정한 측정 기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가 아닌, 나의 텔로미어와 나의 정신이 허락하는 만큼만 늙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이'라는 사회적 감옥에서 벗어나, 찬란한 고유의 시간을 살아내는 사색가이자, 영원한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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