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마다 수 많은 감정의 파도 속을 헤쳐 나간다. 때로는 아침 햇발처럼 벅차오르는 기쁨에 취하고, 때로는 칠흑 같은 늪에 빠진 듯 끝없이 가라앉는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은 도대체 뭐길래 이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것일까?
폴 에크만 박사는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을 기쁨,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의 여섯 가지로 압축했다. 마치 감정의 기본 색깔을 규정한 듯 명쾌하다. 로버트 플루치크 박사는 더 나아가, 이 기본 감정들(기쁨, 신뢰, 공포, 놀람, 슬픔, 혐오, 분노, 기대)을 여덟 개의 축으로 세우고, 이들이 섞여 새로운 색을 창조하는 '감정의 수레바퀴' 이론을 제시했다. 가령 기쁨과 신뢰가 합쳐져 사랑이 되고, 분노와 혐오가 결합해 경멸이라는 더 복잡한 정서를 빚어내는 식이다. 서양의 과학이 이렇듯 감정의 분화와 혼합을 파헤칠 때,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의 일곱 가지 정서, 즉 '칠정(七情)'으로 인간의 마음을 관조했다.
이 모든 복잡다단한 감정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문득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감정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많은 진화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은 감정의 태초를 놀랍도록 단순한 곳, 바로 ‘배고픔’에서 찾는다. 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은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움직이도록 고안된 '행동 유도 시스템'의 진화적 산물이다.
현대 과학뿐만 아니라 고대에 인간들도 배고픔과 감정을 연관 지어 생각한 듯하다. 영어 단어 ‘Emotion’의 어원을 찾아 라틴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Movere’, 즉 ‘움직이다’라는 뜻을 만난다. 감정은 곧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동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인 생명체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동기란 무엇이었을까?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 즉 먹이 활동이다. 몸속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뇌는 강력하고 불쾌한 신호, 바로 ‘허기(배고픔)'를 만들어내며 생명체를 강제로 움직이게 한다. 이 불편함과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획득한 음식으로 인한 일시적인 만족감(쾌)이 복잡한 감정들의 씨앗이었다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접근'과 고통에 대한 '회피'라는 이분법적 신호가 분화되고 복잡하게 얽히면서, 오늘날의 기쁨, 슬픔, 분노로 진화했다는 견해다.
이 원초적인 기원은 우리 삶의 가장 사소한 순간에도 여전히 강력한 흔적을 남긴다. 감정이 배고픔이라는 생리적 현상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나는 오래 전에 등산을 통해서 몸소 체험한 바가 있다.
몇 년 전 여름, 나는 동호회 크루들과 함께 금정산 산행에 나섰다. 나는 평소에 잘 가던 길은 놔두고 낯선 길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산행은 늦은 점심때까지 이어졌고, 무더위 속에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물을 넉넉히 챙기지 못해 갈증까지 극에 달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데, 텅 빈 위장과 메마른 목은 뇌에게 끊임없이 '불쾌' 신호를 보냈다.
그때, 사소한 일로 다툼이 시작되었다. 누가 앞장서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누가 물을 더 마셨는지, 평소 같으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작은 트집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나는 평소 온화하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공격적인 분노로 가득 찬 것을 느꼈다. 주변의 풀포기마저 짜증스러웠고, 동료들의 모든 행동이 미웠다. 굶주림과 갈증은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가장 원시적인 '공격' 모드인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하산 후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우리는 우연히 들른 고기 뷔페에서 숯불 향 가득한 삼겹살과 시원한 맥주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고기가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는 순간, 방금까지 나를 지배했던 '분노'와 '경멸'이라는 감정은 마치 마법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배가 부르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아까 왜 그랬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머쓱하게 웃었고, 언제 다퉜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 기분 좋게 헤어졌다. 우리를 격렬하게 싸우게 했던 것은 복잡한 심리 문제가 아니라, 결국 '에너지 부족'이라는 단순한 생리적 위협이었던 것이다.
감정의 기원이 배고픔과 관련되었다는 생각은 우리 삶에 깊은 통찰을 던져준다. 어쩌면 우리가 최소한의 생존 욕구, 즉 배고픔만 해결된다면 삶의 본질적인 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훨씬 복잡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더 좋은 집, 더 비싼 옷, 타인의 인정, 사회적 성공… 이 모든 것은 배고픔을 넘어선 '인위적인 허기'이다. 우리의 뇌는 수많은 광고와 사회적 압력을 통해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성취'하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또 다른 형태의 불쾌감을 학습하도록 길들여졌다. 이 복잡한 욕망의 회로가 우리의 감정을 끊임없이 흔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나는 이 지점에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우리의 감정 엔진이 그렇게 단순한 '배고픔 해소'에서 출발했다면, 우리 삶의 평화도 가장 단순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소비하려는 현대인의 광적인 '욕망(欲)'을 잠시 멈추고, 그 밑바닥에 있는 진짜 '허기'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내 몸이 보내는 단순하고 솔직한 신호를 먼저 채워주는 것.
배고픔의 의미를 성찰함으로써, 우리는 불필요한 욕망에서 벗어나 삶을 좀 더 소박하면서도 알차게, 즉 덜 가지려 애쓰지만 더 충만한 상태로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배부른 상태의 평온함, 그것이 우리 존재의 가장 순수한 기쁨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