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호수

다시 쓰는 여행 여덟

by 그나

앞이 보이지 않으면 산을 오른다. 가슴이 턱 막히면 바다에 가며, 마음이 구겨지면 호숫가에 선다, 사람들은.


작은 폰 화면을 켜 광대한 인도 지도를 펼쳐보자니 큰 호수가 보였다. ‘파딘하라타’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후에 알았다. 그곳은 자연호가 아니었다. 내가 자란 마을에서 늘상 보았던 충주호처럼 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였다. 높은 산을 겹겹이 병풍처럼 두르고 광대한 하늘을 수면에 반영하는 청명한 호수를 기대했는데, 보고자 했던 풍경은 없었다. 한숨처럼 터져나오는 실망감. 실연당한 사람처럼(많이 해봐서 잘 앎)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행의 실패를 완성하는 저 투명한 마침표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휘적휘적 걷는데, 길 옆 창고에서 뭔가를 열심히 뚝딱이던 아저씨가 날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어디가?

인상이 좋았다

들어와

다정한 제스춰

비 피하고 가

그의 친절을 사양하지 않고 넉살 좋게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저씨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찾는가 싶더니 이내 의자 하나를 내와서는 내 앞에 놓았다. 오른손을 가슴께에 올려 허방을 두 번 누르는, 앉으라는 고요한 손짓.


사소한 언행이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그런 별 것 아닌 말과 행동이 적지 않은 감동으로 밀려올 때가 있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크고 거창한 무엇들은 결국 작고 사소한 조각들이 쌓아올린 젠가와 같은 것. 한두 조각의 이탈로도 쉽게 무너지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 아니던지.


얼마 후 아저씨 조카 되는 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덕분에 우리 셋은 짧은 영어로 얕으나마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조카가 내게 불쑥 물었다.

밥 먹었어?

나를 바라보는 둘의 눈빛은 안 먹었으면 당장이라도 한 상 차려올 것처럼 빛났다. 정말 그럴 것만 같아, 한 끼 얻어먹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이미 먹었다고 둘러댔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카는 웃으며 물었다.

커피나 짜이 한 잔 할래?

덥썩 물고 싶었으나 작업중인 그들을 더는 방해하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내가 두 번 거절하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제 내가 일어설 타이밍. 비는 줄어들 기미가 없었으나 어디로든 가야했기에 둘과 작별인사를 하고 서술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를 보러 왔다가 작고 사소한 친절을 만났다. 호수 여행 실패로 인해 실망으로 구겨진 감정은 어느새 반듯이 펴져 있다. 편편한 마음에 선명한 남은 두 사람. 그들로 인해 나는 그저그런 이 호수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리라 예감했다. 그런데 짜이는 한 잔 얻어먹었어도 그렇게 민폐는 아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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