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여행 세번째
인도인들은 모두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마치 이름을 알면 나의 전부를 알게 된다는 듯이.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애써 묻지 않았다. 이름으로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듯.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시간의 축적뿐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결국 시간도 아니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라는 조금은 쓸쓸한 결론.
남인도 어디쯤 새벽의 어둠 속을 걸을 때 푸줏간 앞에서 만난 가게 주인도 내 이름을 물었다. 이름을 묻는 질문 세례에 나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체념의 마음으로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나
당신의 입술에서 나의 이름은 그럴 듯하게 걸리었다. 당신은 나의 이름을 간직하고 나는 당신의 무엇도 간직하지 않은 채 우리는 헤어졌다.한국말도 인도말도 아닌 제 삼국의 언어로.
바이 바이
그 길을 얼마쯤 더 걷고 있었다.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육성이 기척에 놀란 새처럼 날아올랐다. 뒤를 돌아보자 저만치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오던 당신이 내 앞에서 속도를 줄이다 멈춰 섰다.
그나! 짜이 한 잔 해
완전히 낯선 별의 한 귀퉁이에서 완전히 낯익은 내 이름이 들려올 때 그 한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졌다. 그것은 사람에 대해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나의 섣부른 결론이었을까. 사람을 알아가려는 최소의 노력조차 거부한 나의 묵은 체념이었을까. 그때 무너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푸줏간 주인은 나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웠다.그러고는 온 길을 되돌아가 푸줏간 앞에 멈춰 세우고 말했다.
그나! 들어가자!
그나! 짜이 한 잔 해
나는 깨달았다. 이름 하나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이름으로 서로를 부를 수는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것들이 시작될 수 있음을. 가령, 미명의 새벽 속에서 허름한 가게에 함께 앉아 짜이 한 잔을 나누는 일 같은 소소하지만 사소하지는 않은 그런 일들이.
그 새벽부터 나는 인도 사람들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물었다.
푸줏간 주인. 당신은 알고 있을까? 당신이 그 새벽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그 순간부터, 함께 짜이를 마시고 불통의 언어와 손짓 발짓을 동원해 담소를 나누고, 실없는 웃음을 흘리다 작별의 인사를 남기고 뒤돌았던 그 길지 않은 시간이 내게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었음을?
그 순간부터 내 여행은 비로소 풍성해지기 시작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