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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Aug 02. 2023

유치원 가는 길

악당은 물리쳤는데,,,

내 나이 6살 때, 3살 많은 언니 덕에 한글도 다 떼고 손가락으로 덧셈 뺄셈도 할 줄 알던, 세상이 만만해 보이던 시절에 유치원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동네에 사는 소꿉친구의 이모가 일하신다는 유치원으로. 언니들 따라쟁이였던 나는 언니들이 다녔던 유치원으로 가고 싶었으나, 엄마는 딸 친구엄마의 추천을 거부할 수 없었는지 혹은 친구 할인이라도 받았는지 꽤 먼 거리의 유치원을 등록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먼 거리를 걸어서 가는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그 소꿉친구와 손잡고 가는 길이라 무섭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는 웬 골목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어떤 골목을 지나서 이 골목, 저 골목을 가다 보면 산 아래에 있는 유치원이 보였다. 가는 길에 꽃밭이 보이면 잠시 앉아서 꽃구경도 하고 사루비아 꿀도 빨고 그 친구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우겨대는 클로버잎도 따 먹으면서 그렇게 매일 등원을 하고 하원을 했다. 유치원 노랑 가방도 좋았고 가방 속에든 출석도장을 받을 수 있는 노랑 수첩도 좋았다. 비록 유치원에서 하는 것들은 정말 유치했고 낮잠이 오지도 않는데 억지로 자야 하는 낮잠시간도 심심한 일이었지만 모범생타이틀과 수업시간에 한글을 알고 덧셈뺄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 되어 뿌듯했고 낮잠시간에 원장할머니 허리를 밟으며 안마를 하는 놀이(?)도 재미있었다. 신기하게도 유치원의 식당냄새는 아직도 머릿속 후각기억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신나던 유치원 등굣길에 문제가 발생했다. 부슬부슬 비가 오던 가을날이었다. 나는 그 소꿉친구의 이모가 사준 노랑 우산을, 친구는 빨강우산을 쓰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근처 골목을 절반쯤 들어섰을 때, 어떤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골목은 좁아서 우리는 옆으로 피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친구의 손목을 잡고 같이 가자고 했다. 둘이서 악악 소리를 지르면서 들고 있던 우산으로 그 유괴범을 힘껏 밀어냈다. 그리고 친구가 손목을 뿌리치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 뛰어 골목밖으로 나왔고 각자의 집으로 뛰어갔다. 마침 아빠도 집에 있어서 이 사실을 말하니 놀라며 같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동네사람들은 그 납치범을 잡으려고 다들 모여들고 있었다. 당연히 범인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고 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와서 골목에서 악당을 어떻게 무찔렀는지 그 무용담을 풀어놓고 그날은 유치원을 쉬었다. 그 이후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유치원을 쉬었다. 아니 졸업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책상 위에 걸려있는 그 흔한 유치원 학사모 사진도 없다. 원장 할머니가 내 크레파스와 물건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엄마와 차를 마시던 일은 생각난다. 아주 아쉬워하던 모습도. 나도 아쉬웠다. 곧 12월인데,, 그리고 생일인데,, 매달 열리던 다른 친구들 생일잔치를 보며 얼마나 꿈꿨는데,, 나도 한복 입고 저 큰 상 앞에 앉아서 그 달의 주인공으로써 사진 찰칵 찍는 걸. 결국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생일은 조용히 집에서 보냈다. 내 소꿉친구는 빠른 년생이라 그다음 해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나는 일 년 내내 국민학교에 언제 입학하냐고 묻는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노랗고 뽀송한 유치원 출석수첩이나 꺼내 만지작 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납치사건의 당사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 유괴범이 잡은 손목은 내 친구의 것이었고 나는 내 일인 듯 함께 악당을 물리쳤던 것인데,, 그 사건은 온전히 내가 유괴될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은근히 기분이 안 좋아진다. 걔가 나보다 이뻤나? 나보다 키는 쬐끔 컸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더,,, 낫,,, 지,, 않았,, 을까?? 내가 직접 손목이 잡혔으면 트라우마라도 남아서 안 좋았을 것 같은데도 왜 내가 손목이 잡히지 않은 것을 속상해하는지,, 뭘 해도 우월하고 싶은 내 하찮은 자존심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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