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안의 새
내가 어렸던 그 시절엔, 지금의 코숏 고양이는 그냥 길냥이 또는 도둑고양이였고, 멍멍이는 마당에서 집이나 지키고 있었고, 부잣집들은 집안에서 새를 키우는 것이 보통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집은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큰돈 들지 않는 선에서 유행을 따라가는 편이었다.
화단의 나뭇가지에 튼튼히 걸려있는 새장에는 노랑 잉꼬부부가 살던 적도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를 가두어 두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건 새들만 아는 일인 듯, 물이나 모이를 채워주기 위해 새장 문을 여는 순간을 틈타 짝도 버리고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이쁜 잉꼬가 우리와 함께 지낸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후에,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새는 잉꼬처럼 이쁘지는 않은, 십자매라는 이름의 회갈색 작은 새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성비가 좋은 새였던 것 같다. 물과 모이를 주려고 새장문을 열었을 때 혼자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짝꿍이 떠나가면, 엄마는 며칠 뒤에 다시 시장에서 십자매 친구를 사 와서 넣어주었다. 잉꼬를 보냈을 때처럼 우리 셋 중 누구의 실수였는지 그리고 왜 그리 조심성 없는지를 따져 묻지도 않았다. 가성비 갑의 십자매라서 다행이었다.
이 작은 귀여운 녀석들은 아침마다 짹짹거리고 화단의 꽃나무들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 주었다. 이 쪼꼬미들은 깔끔쟁이였다. 물을 마시라고 넣어두면, 그 물통에 들어가서 목욕을 했다. 쪼꼬미 체격이라서 손바닥보다 작은 그 물통이 그들의 식수통이라 아니라 욕조 같았다. 먹는 물인데 들어가서 몸을 담그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녀석들이 안타까웠지만 목욕하는 새라니,, 신기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깔끔쟁이 작은 부부는 짝짓기를 잘하는 것 같았다. 새장 속 둥지 안에 메추리알보다 작은 연약한 세네 개의 알들을 자주 낳았다. 비록 부화시키는 건 배우지 못했는지, 둥지밖으로 밀어버린다거나 알을 품다가 터트려버린다거나 혹은 품지 않고 그대로 냅두는 것이 전부였지만. 알이 터져서 흰자 노른자와 껍질이 배에 뒤엉켜서 말라붙어있는 새를 잡아 꺼내어 씻겨주는 건 엄마 몫이었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참 책임감 없고 한심해 보이는 부부였다. 알을 낳았으면 말야 어! 잘 품어서 말야 어! 부화를 시켜야지 말야!!!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니 한 마리만 새장에 남아서 짹짹거리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났을 엄마도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엄마의 추측으론, 집에서 멀지 않은 산에서 내려온 살쾡이가 우리집 새를 잡아먹으려고 나무를 타고 새장을 건드렸고, 새장문이 열리면서 날아간 것이 아닐까,, 였다. 아무리 날쌘 삵이라도 날아가려는 새를 잡지는 못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안심하면서.
마침 방학이라 사촌이 놀러 왔다. 그 키가 큰 사촌형제들과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중, 십자매 새장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우리 깔끔쟁이랑 닮은 새를 발견했다. 사촌은 큰 키를 뽐낼 때가 왔다. 조용히 다가가 배드민턴 채로 새를 퍽! 내리쳤다. 그 새는 순간 놀라 화단 흙바닥으로 떨어졌고 사촌은 그 떨어진 새를 냉큼 주웠다. 그리고는,, 새장에 넣어버렸다. 우리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냥 이런 상황과 우연이 놀라울 뿐이었고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짝을 날려 보내고 홀로 남았던 십자매는 놀랐을 것이다. 크기도 좀 더 크고 닮은 듯 아닌듯한 이상한 새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니, 싸우자는 건가,,,라고 생각했겠지. 몇 날 며칠을 퍼드득퍼드득 난리도 아니었다. 지금 같았으면 둘 다 날려 보내줬을 텐데, 무슨 조류학자라도 되는 듯 그들을 지켜보았다. 새로 온 새는 야생이었을 테니 나가려고 퍼드득거리고 원래 깔끔이 십자매는 위협을 느껴서 퍼드득 거리고,, 밤이 되면 새로 잡혀온 새는 둥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둥지 앞 횃대에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둥지 안에서 함께 있는 그들을 발견했다. 그 당시에는 우와 신기하다 이러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십자매는 날아갈 희망을 가졌던 녀석에게 날아갈 수 없음을 알려준 걸까,, 아니면 그 녀석 스스로 포기한 걸까,, 십자매는 새로 온 녀석을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어쨌든, 둘 다 포기하고 체념했을 것이다.
그 녀석들을 체념하게 만든 건 이기적이고 아무 생각 없었던 우리들이었다. 나는 스스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새장에 새를 가두며 날지 못하도록 가스라이팅(?)해서 의지를 꺾고 체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창피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