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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May 12. 2023

봄손님

서열 꼴찌


우리 집에는 봄마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었다. 제비들이었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요즘은 보기가 힘들어졌지만, 어렸을 때에는 밖에서 놀다가 제비가 땅 가까이로 낮게 날면 좀 있다가 비가 온다는 걸 알고는 놀이를 그만두고 집으로 가는 일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흔한 새였다. 그 제비들은 날씨가 따뜻해질 때쯤이면 우리 집 처마밑을 찾아오고 추워지면 어디론가 떠났다. 엄마는 그 작은 손님들이 남기고 간 지푸라기로 된 둥지를 삽으로 긁어서 없애곤 했지만 그럼에도 그 까만 턱시도를 입은 듯한 녀석들은 우리 집을 기억하고 날아왔다. 물론 지난해의 그 녀석들이 이 녀석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어디선가 지푸라기와 낙엽들을 물어와서 백과사전에 나오는 완벽한 반원의 새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언제 알을 낳고 부화시켰는지도 모르게 올망졸망 새끼들을 모아놓고는 먹이를 물어날랐다. 그들이 둥지를 만드는 건 다시 봐도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뭐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놀랍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냥 '또 시작이네!~' 이 정도의 성가심뿐이었다. 키 작은 아이에게 지붕의 처마밑은 너무 높은 곳이라 물리적으로 관심밖의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새벽부터 짹짹거리는 수다쟁이 제비가족 때문에 늘 시끄러웠지만, 나는 흥부네 제비처럼 언젠가 우리 집에 호박씨를 가져다줄 것이며 다 자란 박 안에 어떤 보물이 들어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개뿔,, 그들은 나만 지나가면 머리 위를 과녁 삼아 똥을 싸고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먼산을 바라보며 모른 척 가만히 있었다. 아래에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냥 자기들의 영역에 내가 잠시 지나가는 것처럼 당당했다. 내가 더럽다며 울고불고 쌩쑈를 떠는 꼴을 지켜볼 뿐이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서열 꼴찌라는 걸 아는 듯이 나에게만 오물을 투척했다.


어느 날, 꼬마들이 늘 그렇듯 밥 먹기 싫어서 깨작거리다가 식구들의 식사가 끝나도 반이나 남은 내 밥그릇을 본 엄마는 잔소리를 쏟아부으며 큰 그릇에 밥과 국, 반찬들을 비벼서 건네준 후에 상을 치워버렸다. 먹기 싫은 밥이 다른 반찬들로 인해 더 양이 많아져 버린 건 속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의 할당량을 다 먹어야 한다는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시원한 마당으로 가서 왼손에는 밥그릇을,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왔다 갔다 걸으며 밥을 먹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놈의 제비가 하필 밥그릇을 들고 있는 왼손 손목 위에 배설물을 떨어뜨리고 마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나를 만만하게 생각했던 건지, 내가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국물에 불어버린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걸 알고 놀리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뜻뜨미지근한 느낌에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수돗가로 뛰어갔다. 드라마에서 보면 놀랄 때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이나 컵을 잘도 떨어뜨리더만, 그릇까지 깨버리면 엄마한테 더 혼날 일이 두려웠는지 본능적으로 그릇은 꼭 쥐고 뛰었다. 옆에서 놀던 언니들은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고 나는 너무 놀라고 제비에게 승질이 났지만 한편으론, 덕분에 남은 밥을 먹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새똥도 너무 싫지만 그보다 밥이 더 싫은 아이였나보다.






그 제비들이 명을 다해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건지 더 좋은 집의 처마를 발견했는지 몰라도 어느 해부터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처마가 있던 집은 허물어지고 이층 집이 되었고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자차로 출근하는 여유를 부릴 나이가 되었다. 하루는, 일렬로 길게 주차된 차들 가운데 내 차의 앞유리에만 새똥이 떨어져 굳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하,, 이 흔적을 닦을 생각에 먼저 한숨이 났지만, 한편으론 20년쯤 전의 우리 집 처마밑의 제비들이 생각났다. 서열꼴찌인 나의 차를 알아보는 그 제비의 후손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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