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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May 29. 2024

호기심 천국

꼬마의 하찮지 않은 궁금증

8살 나에게 최대의 미스터리가 있었는데 내 목소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한창 티비에서 천년여왕이라는 만화를 방송했었고 그 여왕의 앙칼진 웃음소리는 압권이었다. 음하하하~~!!! 이걸 듣고 나면 하루종일 귀에서 그녀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그러던 중,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인형놀이를 하던 날이었다. 나는 그 천년여왕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녀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보았다. 하지만 들리는 건 나의 저음뿐이었다. 전혀 앙칼지지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도 않은 그냥 저음의 웃음소리.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이상하고 궁금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거 너무 이상해. 머릿속으로는 천년여왕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데 왜 실제로 말을 하려고 하면 왜 똑같지가 않지?"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나 너무도 당연한 걸 이상하다고 말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누구라도 내 말에 수긍을 하거나 공감을 했다면 궁금함은 더 이어졌겠지만 나의 말은 그저 0.1초의 정적만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나의 궁금증은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성대라는 신체 기관을 배우기 전까지 시간 속으로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 되니 세상에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그중 하나는 우리 집 냉장고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는 작은 언니와 이야기 중에, 냉장고는 항상 불이 켜져 있으니까 냉장고 전등 근처에 있는 위칸에 음식을 보관하면 상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냉장고 문을 닫으면 냉장고 속 전등은 꺼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위칸에 있는 음식의 뚜껑에 손을 대보니 역시 차갑다! 둘 다 어리긴 했지만 공교육을 3년 더 받은 언니가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냉장고 문에 붙어서 문을 열고 닫으며 불이 꺼지는 순간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불이 꺼지는 순간은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이니까. 며칠을 그렇게 냉장고 문과 씨름하며 엄마한테 야단을 들으면서도 내 눈으로 직접 냉장고 불이 꺼지는 그 순간을 보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결국엔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냉장고에서 떨어져 나오고 말았지만 어린 마음에 냉장고 만든 사람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음식을 차갑게 보관해서가 아니라 문을 닫으면 저절로 불이 꺼지도록 만들어 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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