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막귀입니다만,,,
언니들이랑 모여 앉아서 과자를 먹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작은 언니는 과자 먹을 때 유난히 '아삭아삭' '사각사각' 과자 깨무는 소리가 상큼(?)하게 나서 발랄한 음악소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면 내가 내 귀로 듣는 나의 과자 먹는 소리는 '서걱서걱'하는 묵직한 소리로 들렸다. 나는 이상해서 작은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랑 나랑 왜 소리가 다르냐고. 작은언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니 이빨이 이상해서 그래"
나는 놀라서 큰언니에게 물었다. 진짜 우리 둘이 소리가 다르냐고. 그리고 그 이유가 내 이빨 때문이냐고. 큰언니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때는 큰언니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쟤들이 또 시작이네 하는 이런 표정이었을 것 같다. 작은언니는 늘 나를 놀려먹는 재미로 살지만 나 또한 매번 그렇게 속아 넘어가는 멍청이였다. 다른 식구들도 그런 순간을 보는 것을 재밌어하는 듯했다.
더 황당한 건, 사각사각 소리의 진실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친구들에게서 내게도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는 말을 듣고 언니에 대한 배신감과 나의 멍청함에 한숨이 나왔다.
너무 늦게 알았다. 억울했다. 나는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과자 먹을 때 내는 상쾌하고 명랑한 아삭아삭!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지니지 못한 아이로, 그 소리에 관해서는 자신감 없는 아이로 살았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 중에서 인형 놀이를 안 해본 아이들은 없을 듯하다. 공주와 공주의 옷, 신발과 가방들이 그려져 있는 4절 크기의 종이인형 도안을 사서 가위로 예쁘게 자른 후 옷과 갖가지 장신구를 걸어 주고 놀았다. 인형놀이 중의 최고는 마루인형놀이였다.
엄마는 함께 갖고 놀도록 인형을 사주셨겠지만 서로 좀 더 신상의 인형을 갖겠다는 싸움은 매번 있었다. 관절이 따로 움직이는 인형은 마루인형 중 최애였다. 언니가 더 이상 인형 놀이에 관심이 없어지는 나이가 되자, 그 인형들은 자연스레 내게 물려 내려왔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레이스 옷들은 손때가 묻고 찢어져서 너덜거렸다. 바라던 대로 이 인형들은 나의 것이 되었지만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인형들이 낡아서였는지 몰라도 내게 그 마루 인형들은 더 이상 반짝거리지 않았다.
그런 허탈한 감정의 시간 이전, 언니와의 인형놀이는 주로 마루에서 이루어졌다. 그 시절 나는 마루에서 인형을 갖고 놀아서 마루인형인 줄 알았다. 누구에게도 왜 마루인형이냐고 물어본 적은 없었다. 의심하지 않았기에. 7살 꼬마의 작은 마음에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마루인형놀이는 마루에서.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요.
농부가 씨를 뿌려, 흙으로 덮은 뒤에, 발로 밟고 손뼉 치며 사발을 들고 오지요."
유치원에 다녀오면 배운 노래를 하루종일 흥얼거렸다. 마치 수능 금지곡을 배운 것처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문제는 <가사는 내 맘대로>라는 것이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의 맨 마지막 가사는 '사방을 둘러보지요'였지만 나는 '사발을 들고 오지요'라고 불렀다. 듣고 있던 큰언니가 틀린 가사라고 알려주었지만 나는 내가 맞다고 우겨댔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또 다른 노래 하나를 망치게 된다.
몇 안 되는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요 중에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옛날 노래가 있었는데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보는 대답 없는 내 형제여~'를 나는 '오륙도 도망가는 연락선마다~~~'라고 불렀다. 여기서도 큰언니가 '돌아가는 연락선'이 맞다고 알려주었지만 나는 우겨댔다. 도망갈 수도 있지!! 라며.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선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맞아! 를 시전했지만 결과는 내가 다 틀린 거였다. 창피하군.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을 가졌었는지.
나의 귀는 지금도 막귀라서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노래 가사든, 드라마 대사든, 옆사람 말이든,, 그리고 종종 우겨대기도 한다. 속상할 때도 있고 웃기는 일도 많다.
최근에 어떤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레슨 강사가 나에게 물었다. "알츠하이머세요?" 놀라서 "네?"라고 물으니 "아예 처음이시냐고요?"라고 했다. 아예 처음이냐는 말을 어떻게 알츠하이머라는 단어로 들을 수가 있는지,,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누구를 탓하겠어,, 나는 6살부터 고집있는 막귀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