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 Mar 23. 2023

그네

우리집 놀이터

어느 날은, 아빠가 뒷마당에 그네를 놓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침부터 그네는 언제 오는지, 어떤 그네인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한참뒤, 엄마는 아빠가 왔을지도 모르니 나가보라고 했다. 그 말에 서둘러 골목밖을 뛰어나갔다.

골목앞에 트럭, 그 트럭 위엔 아빠와 커다란 그네가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라고 있는데 아빠가 손짓을 했다. 몇 명의 인부들이 그걸 내리고 옮기기 시작했다. 다시 뛰어들어와서 엄마에게 그네의 도착을 알리고 우리집에 아주 큰 그네가 생긴다는 설렘으로 긴 마당에 오가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냥 나무와 풀만 있던 뒤뜰에 우리의 또 다른 추억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기억 속 그때는, 내가 꽤 자라서 최소 7살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본 그네타는 사진 속 나는, 완전 꼬꼬마,, 4~5살 정도였다. 그 나이 때의 기억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네가 늘 그렇듯, 누군가가 밀어줘야 그 기능을 발휘하는 법. 절대로 혼자서는 놀 수 없다. 매번 나보다 힘 좋은 언니들이 그네를 밀어주었는데, 내가 작고 힘이 없어서 무거운 그네를 밀지 못하자 작은 언니는 의견을 내놓았다. "너 몸에 줄넘기줄을 묶어서 끄는 게 어때?" 앞으로 갈 땐 힘겹게라도 끙끙대며 갔지만 그네가 뒤로 밀려갈 땐 넘어지지 않으려고 뒤로 열심히 뛰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위험하고 노예인가 싶고 황당한 일이지만 그때는 모두 다 너무 웃겨서 깔깔댔고, 공정한 큰언니는 막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작은언니에게 너도 해보라며 웃으며 허리에 줄넘기줄을 묶어주었다.


언니들이 없을 때 그네는 그냥 조금 흔들리는 탁자였다. 혼자 그네바닥에 앉아서 흙밥과 풀잎 꽃잎 반찬으로 밥상을 차리며 색색가지 만찬을 즐겼다.




신나게 함께 놀아주던 그네는 우리가 나이 들면서 함께 서서히 녹이 슬고 낡아졌다. 우리에게 그네타기가 유치한 일이 되어 가고 뒷마당으로 가는 우리 발길이 뜸해질 무렵, 그네 윗부분의 쇠고리가 삭아서 내려앉고 말았다. ​


비록 마지막엔, 뒷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처치곤란의 쇳덩어리 폐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 그네는 우리들과 잊을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을 함께 했고, 최고의 포토존이자 자랑거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당은 놀이와 힐링의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