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8할은 타이밍
거진 최저 시급의 월급을 받으며 최소한의 일을 해나가던 나는 몇 주전 온갖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게 스팸 메일을 보냈던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뭔지 모를 충동(?), 욕구(?)에 의해 애걸하다시피 휘갈겨(타자를 쳤으니 '굴림체' 정도 일듯...) 여러 통을 동시에 보내었지만, 며칠이 지나도 답장은커녕 읽음 확인조차 받지 못하였기에 바쁘지 않은 무료한 일상에도 나는 그 일을 까먹었다.
여전히 한가하지만 무기력한 오후, 문득 생각나 접속한 채용 웹사이트의 메시지함에 빨간 점이 떠있다. 그 빨간 점을 보았을 때 나는 떨렸던가? 기대하고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로운 메시지 한통. 누군가로부터 온 답장이었다.
"이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현재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신분인가요?"
(thanks for reaching out. Before we jump into the details, are you eligible to work in the US?)
기쁘다기보다는 신기했다. '어? 이게 되네?' 싶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며 스스로도 '과연 읽을까?', '답장이 올까?', '이 방법이 맞기는 하나?' 하는 회의감에 뭐 어차피 손해 볼 것 없다 싶은 심정으로 보낸 메시지들이었다. 살짝 조급한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네, 저는 현재 영주권자입니다. 귀하의 회사에서 정말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yes, I am a permanent resident. I would love to work for your company.")
다소 경박스러워 보이는 표현이었으나 온라인상의 문자로 나의 진정성과 애절함을 담을 방법이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직장을 구할 때나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에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합법 여부'. 새삼 외국인이라는 신분에 위화감이 든다.
답장을 보낸 그날 오후 내내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해 처음으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뒤통수에 내리 박히던 황차장의 싸한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에 마음이 한 껏 부풀었다.
퇴근 시간까지 그 인사 담당자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왠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한 뉴욕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자존감이 우뚝 서는 날이기도 했다. 두드리면 열린다더니 뭔가 삐걱하고 문틈이 보인다.
답장을 보낸 후 인사 담당자는 다음날 아침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재 우리 회사 타임 스퀘어 매장에 매니저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보내온 이력서를 검토한 결과 현재 모집하고 있는 파트와 적격일 것 같네요. 타임 스퀘어 매장 인사 담당자의 이메일을 첨부합니다. 이 분한테 이력서 보내 놨으니 연락 주시면 됩니다."
(We are currently looking for managers at our Times Sqaure location. Based on your resume, this role may be perfect for you. I am attaching the contact info of the talent acquisitoion at store 400. Please contact him, I've forwarded your resume.)
서둘러 새로운 메시지를 열어 급박하게 타이핑을 시작한다. 왜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모르겠다. 연락처를 받을 인사 담당자에게 어서 이메일을 보내야 했다. 어쩐지 조금이라도 늦게 연락하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애절했기 때문이겠지...
내용은 길지 않게, 하지만 내가 바로 그 인재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적었다. 나를 연결해준 인사 담당자의 이름을 빼먹지 않고 언급하며 누구누구의 요청으로 이렇게 연락드린다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임 스퀘어 매장의 인사 담당자라는 사람에게 답장이 왔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이었다.
“이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 괜찮다면 내일 정도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내일 10시 반 괜찮겠어요?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하나 남겨주세요.”
짧지만 강력한 한방. 전화 인터뷰.
당연히 만사 제쳐두고 어떻게든 10시 반을 되게 할 것이었다. 물론, 그 시간이 안 될 만큼 내가 바쁜 것도 아니었으니…
초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내일 10시 반 괜찮습니다. 제 전화번호는 000-000-0000입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직에 성공했다. 약 2주간에 걸쳐 전화 인터뷰, 점장 인터뷰, 단체 인터뷰를 통해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연봉협상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에도 과연 내가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 화이트 칼라 직업을 버리고 갑자기 매장 업무에 뛰어들겠다는 것이었는지. 당시에는 최장 6개월까지만 매장 근무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본사 md로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후에 병원 다녀온다는 거짓말과 함께 새로 근무하게 될 매장에서 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돌아온 뒤, 나는 그 즉시 2주 통보와 함께 사직서를 보냈다.
1년 반을 근무하는 동안 딱히 친하게 지낸 동료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황차장은 2주 전쯤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 본부장님이 우리 팀을 봐주고 계셨다. 그리하여 그 오후에 나는 본부장님 방을 찾았다.
이 은행에서 그나마 딱 한 분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본부장님이었다. 언제나 온화하게 실수도 덮어주시고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으셨던….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입사 후 1년 뒤에 우리 부서로 책정된 보너스가 남았을 때, 신입에게 더 많이 주라고 입김을 넣어주신 덕에 내가 몇십만 원 더 받았다고 한다. 황차장이 내 인사 평가를 낮게 주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렵게 꺼낸 첫마디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떠난다 말씀드렸다. 이 본부장님은 말을 아끼시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하셨다. 가서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내일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뉴욕 첫 직장에서 나는 1년 반 만에 퇴사하였다.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의 절정인 5월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이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무런 연고 없는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나에게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름 위를 걷는 기분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