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b단조 미사를 듣고
기독교에는 ‘대속’이라는 개념이 있다. 죄를 지은 인간과 신의 관계가 깨어졌고, 이를 속죄하려면 피, 곧 죽음의 대가가 필요했다. 구약에서는 죄 없는 짐승이 희생 제물이 되어 사람의 잘못을 덮었고, 이윽고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류가 받을 심판을 대신 짊어지게 되었다. 그를 믿는 사람은 그 대속의 은혜 안에 들어가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얼마나 편리한가! 이렇게 누군가 내 잘못을 대신 짊어졌듯, 나는 오늘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드리지 못했던 모든 예배를 누군가 한꺼번에 대신 드려주는 것을 체험했다.
천국이 실재한다면 바흐는 반드시 거기서 보내졌을 것이다. 우주의 질서와 신의 말씀에 미천한 인간이 탄복할 수 있도록. 대위법 속에 모든 음표들이 궤도를 따라 도는 행성이 되며, 푸가 안에서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파고가 수학적 안정을 찾아간다. 악보 끝마다 Soli Deo Gloria를 새기며 일생을 헌신했던 이 하나님의 종. 그가 모든 힘과 영혼을 쏟아 25년에 걸쳐 빚어낸 b단조 미사가 오늘, 헤레베허와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연주로 울려 퍼졌다.
고악기라 볼륨이 작을 것을 예상하고 무대 바로 앞 자리를 잡았다. 예상대로, 아주 작고 섬세한 소리들이 내 귀를 감쌌다. 예쁜 술이 달린 트럼펫이며 시골 분교에서나 볼 법한 작은 오르간까지. 처음 이 곡이 세상에 들려졌을 때를 상상한다. 그 소리는 분명 지금처럼 작았겠지만, 세상의 소음 역시 작았으므로 그들의 연주는 교회 담장을 넘어 거리거리에 퍼져, 모두의 마음 속에 닿았으리라. 너무 많은 것을 들어 닳고 닳은 우리의 귀는 이제 그 작고 여린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합창단원들이 들고 있던 헤진 악보를 보며, 과연 그동안 몇 명이나 나처럼 이런 구원 비스무레한 기분을 느꼈을지를 생각하다 이내 나는 아득해졌다. 성부 위에 성부가 얹혀지며 악기와 사람의 목소리가 한데 엮여 시공간을 관통할때. 어떤 순간은 다른 순간보다 중요하다. 바로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