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거리

예핌 브론프만의 리사이틀을 듣고

by sue


초식동물마다 포식자가 다가올때 도망가는 임계거리가 다른 것처럼 작품과 음악가의 사이에는 각 곡마다 정해진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어떤 곡은 마치 음악을 집어삼킨것처럼 내면화해야하고 또 다른 곡은 적당히 멀찍이서 응시하듯 담담히 그려내야 할 터. 마음이 앞서 너무 빨리 다가가면 음표들이 달아나버리고 지나치게 멀리에만 서있으면 곡을 붙들 수 없다. 이 알맞은 거리를 체화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대체 몇번이나 연습을 하고 얼마만큼 혼자 고뇌를 해야했을까. 젊은 청년이 하얗게 센 머리와 느릿한 걸음의 노인이 되기까지, 예핌 브론프만은 모든 곡에 다가섰다가 물러나기도 하며 마침내 그 적정거리를 찾아내었다. 섬세한 아라베스크부터 휘몰아치던 프로코피예프, 앵콜의 서늘한 차이코프스키와 광폭한 리스트까지. 오늘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모쪼록 건강히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들려주시기를 바란다. 아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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