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리어스 맨> 을 보고
어째선지 계속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생기는게 당연하다는 듯 머리아픈 일들이 연거푸 일어날 때면 나도 모르게 찾아보게 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코엔 형제의 <시리어스 맨> 이다.
굉장히 수상한, 그러나 아주 의미심장한 시작이다. 시대도 배경도 모르겠는 대충 추운 유럽 대륙의 어느 겨울날, 한 사내가 집으로 들어오며 아내에게 말한다. 이 눈보라 속에서 한 노인에게 도움을 받았노라고. 아내는 그의 이름을 듣고 사색이 된다. 수년 전 죽은 사람이라며, 당신은 악령을 본 게 틀림없다고 소리치는 순간,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남편이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이윽고 노인이 들어오고 남편은 그에게 수프를 대접하지만 시간이 늦었다며 사양하는 노인에게 아내는 코웃음을 친다. 그러면 그렇지! 귀신이니까 못먹는게 뻔하다고! 실랑이가 이어지다 아내는 느닷없이 노인의 가슴팍에 칼을 꽂는다. 남편은 질겁을 하고, 한참을 나오지 않던 피가 노인의 실소와 함께 이윽고 천천히 흘러나온다. 노인은 초대받지 못한 곳에선 떠나는게 맞다며 눈보라 속으로 걸어간다. 우린 틀림없이 저주받을 거라며 울부짖는 남편과 악령을 해치운거라고 의기양양한 아내.
그렇게 이 황당무계한 첫 장면과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라는듯, 전혀 다른 화면비와 색감의 본편이 시작된다. 대학에서 양자역학을 가르치는 래리는 성실한 유태인이다. 그러던 그에게 마치 신이 하루밤사이에 그를 버리기라도 한 듯 연거푸 나쁜 일들이 벌어진다. 아내는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하고(심지어 새로운 상대는 래리의 친구이다), 테뉴어 심사를 앞둔 가운데 한 한국인 학생이 제멋대로 돈을 두고간 후 성적을 올려주지 않으면 고소를 하겠다 협박을 한다. 자식 둘은 매일 아웅다웅에, 집에 얹혀 지내는 장애가 있는 형제까지 말썽이다. 옆집 이웃은 우리집 마당을 넘어서 자기네 차고를 짓는다. 구약의 욥을 연상케하는 시련들. 래리는 해답을 찾고자 랍비를 찾아가지만(그는 무려 세 명의 랍비를 만난다) 답을 얻을 수 없다. ’I haven't done anything‘이라며 소리치지만 신은 묵묵부답이다. 칠판 한가득 수학 공식을 빼곡히 적으며 래리가 설명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가 바로 그의 삶이다. 종신재직권을 얻을지/말지, 한국인 학생이 밀고하는 투서를 보냈는지/아닌지, 아내가 친구와 원래부터 그렇고 그런 관계였는지/아닌지 그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중첩상태인 래리의 인생.
학생에게 ‘시험 문제에 답을 쓰려면 수학을 알아야 해. 고양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수학이야!’ 라는 래리의 대사는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정작 자신의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내 인생이 망했는지 아닌지)가 너무나 중요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면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일부러 이 영악스러운 감독들이 래리의 이야기와 짐짓 다른 것으로 분리한 첫 장면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저주인가? 래리의 고통에는 이유가 있나? 그리고 마지막에 이내 들고야 마는 가장 암울한 생각.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든 시련의 끝판왕격인 돈 문제로 그는 결국 흔들린다. 형제가 도박과 남색으로 기소를 당해 변호사를 선임하여 3000불이 청구가 되었다. 서랍에는 한국학생
클라이브가 두고 간 돈봉투가 아직 들어있다. 그는 잠시 공책을 보다 F가 적힌 학생의 성적을 지우고 C라고 쓴다.(나의
눈시울을 언제고 붉어지게 만드는 장면은 그가 다시금 망설이다 이내 C옆에 -를 붙일 때이다) 이제 그는 I haven't done anything이라 말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그 순간, 누가 다 보고 있었기라도 한 듯 전화벨이 울린다. 얼마전 건강검진 결과인데 얼른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내용이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엎친데 덮친격으로, 창밖에는 난데없는 토네이도가 오고 있다. 깃발은 미친듯이 나부끼고, 래리의 아들은 자신을 잡아삼킬것 같은 돌풍 앞에서 “Look at the flag!"라며 소리친다. 깃발이라는 기표안에 담긴 모든 기의들이 흔들리며 영화는 끝이 난다.
<곡성>을 유대인식 블랙코미디로 번역해 놓은 듯한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실 하고 싶은 말 따위는 없을지 모른다. 감독도, (신이 있다면) 신도 말이다. 우리는 그러면 이 알 수 없는 것 천지인 세상에서 대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곡성의 종구가 닭이 세번 울기 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 모든 나쁜 일들은 꿈이 되었을까? 래리가 클라이브의 성적을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면 중병을 암시하는 전화는 오지 않았을까? 외지인을 의심한게 죄라면, 의심을 싹트게 한 신은 죄로부터 결백한가?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가? 우린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던 세 랍비들은 정당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만이 답이므로.
그러니 이 불어오는 폭풍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깃발이 날아가지 않게 어떻게든 깃대를 붙들어 보는 것일테다. 결국에는 부러질지언정 말이다. 이유는 사실 없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달리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