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과 말씀 사이, 텍스트 저 너머로

선데이 크리스찬의 일기

by sue


어젯밤 이름 모를 계정으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임윤찬의 리사이틀을 보고 쓴 내 글이, 그중에서도 성경을 인용한 대목이 불편했다는 지적이었다. 나의 후기가 팬들이 모인 공간에 공유된 모양인데, 그 글을 보고 화가 나셨단다. . 교회도 안 다니는것 같은데 성경은 왜 인용하느냐며, 잘난척하려는 거냐며, 혹 내 종교가 기독교라면 더 기가 막힐 노릇이라는 일갈. 성경적 권위를 훼손하거나, 신성한 텍스트를 한낱 예술적 수사로 전락시킨 무례한 행위로 비춰진 모양이다.


성경을 오직 성경 안에서만 말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그대의 자유. 문자를 박제된 법전으로 읽을지, 삶을 비추는 유연한 렌즈로 읽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자유가 있는 만큼 나에게도 자유가 있다. 비록 나일론신자이고 게을러빠진 선데이 크리스천이기는 하나, 나는 스스로를 신앙인이라 여긴다. 내게 성경의 구절은 폐쇄적인 교리가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라는 마태복음속 구절은 인간이 지상의 물리적 생존에만 함몰되는 존재가 되서는 안된다는 걸 알리신 예수님의 외침이셨다. 그 말씀이 꼭 뒤에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이라는 구절과 함께 쓰여야만 하며, 종이위에 박힌 글자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가.


본래 성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그리고 깊이 교차로 인용되어 온 인문학적 텍스트의 정점이다. 내가 인용한 도스토예프스키 또한 평생 성경을 머리맡에 두고 살았던 지독한 신앙인이 아니었던가. 차라리 나의 표현이 지나치고 오버스럽다거나, 고작 음악 하나에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냐는 지적이라면 취향의 문제이니 기꺼이 오케이 하겠다. 그러나 글 전체의 흐름과 동떨어져 특정 단어에 매몰되어 본인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전형적인 맥락맹의 소치다. 명확히 해두자면, 내가 쓴 글은 애초에 종교를 이야기하고자 한글이 아니었다. 나는 임윤찬이라는 개인을 신격화하기 위해 성경을 빌려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내게 허락하신 ‘일반 은총’ 정점,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내가 아는 가장 거룩한 언어를 꺼내 들었을 뿐이다. 그 높고 멋진 것에 압도되어 ‘이토록 고귀한 순간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읊조리는 것이 어찌 신앙의 모독이 될 수 있으랴.


참된 신앙은 성경을 울타리 삼아 세상을 검열하는 편협한 시각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날개 삼아 세상의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 속에서 창조주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라 믿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의도적 변용을 불경함으로 보는 것은 당신의 자유다. 하지만 한마디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진짜 신앙인은 함부로 정죄하지 않으며, 타인의 정죄로부터도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한줄요약 : 예수님 사랑해요

작가의 이전글예술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