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의 홍콩 리사이틀을 듣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소설 <백치>에서 미쉬킨의 입을 빌려 그의 예술론을 설파한 바 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이 문장은 종종 예술 그 자체의 미학에만 침잠하는 나른하고 무용한 탐미주의적 선언으로 오해받곤 하는데, 사실 그는 결코 ’예술을 위한 예술‘만을 지지한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그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 할 수 있는데, 아름다움이란 정신적 허기를 채우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며 바로 이것이 예술의 존재 이유라 보았던 것이다. 세상을 구원한다니, 이보다 더 큰 쓸모와 효용이 어디 있으랴. 나에게는 임윤찬의 피아노가 바로 그런 구원의 실증이다.
오늘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구성 자체로 거대한 세계의 충돌이자 융합이었다. 첫 곡은 슈베르트 소나타 17번 가슈타이너. 고백하자면 사실 프로그램이 공개되었을 때 이 곡은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난생처음 들어보는 텍스쳐의 슈베르트가 들려왔다. 때로는 발을 구르기도 하고 허밍을 섞어가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산책자라기보다 차라리 구도자에 가까웠다. 특히 음과 음 사이를 집요하게 끌고 가는 정교한 테누토로 슈베르트 특유의 방랑자적 리듬을 단순한 반복이 아닌 팽팽한 긴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음을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안개가 자욱한 가슈타인의 숲길을 홀로 걷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나는 것이었다. 곡의 마지막 순간에 연주자는 마치 조율사처럼 피아노에 한쪽 귀를 대보더니, 이내 원하는 음을 찾아낸 듯 짐짓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건반에서 손을 떼었다.
2부에서 공기는 급변했다. 너무나도 고대하던 스크랴빈의 소나타 세 작품. 2번 환상 소나타에서 오늘 임윤찬이 그려낸 음색은 이전 콩쿠르 영상에서 보여준 연주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과거의 연주가 열정적으로 심연을 파고들었다면, 오늘의 그는 극도로 절제된 약음 속에서도 소리의 층위가 무너지지 않는 입체적인 보이싱을 선보였다. 수면 아래 일렁이는 심연의 빛깔을 투명하게, 그러나 훨씬 더 예리하게 포착해낸 터치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이어진 3번 소나타에서는 ’영혼의 상태‘라는 부제답게 보다 격정적인 바다의 서사와 함께 듣고도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나는 피아노가 그렇게 큰 볼륨을 낼 수 있는 악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임윤찬은 귀가 멀어버릴 듯한 굉음으로 피아노 위에 거친 파도를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그는 명확하게 분리된 내성의 움직임을 통해 스크랴빈이 의도했을 심연의 고통과 환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스크랴빈이 지상의 중력을 벗어나 우주적인 황홀경으로 진입한 첫 신호탄이라고 할 마지막의 소나타 4번. 1악장에서 임윤찬은 고음부의 배음을 이용해 마치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응시하듯 고요하고도 신비로운 광채를 띄워 올렸다. 2악장 prestissimo volando에 이르러 모든 음표가 섬광처럼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는 보고도 믿지 못하는 순간이 일어났는데, 눈이 채 쫓아가지 못하는 빠른 타건에도 그는 단 한 음도 놓치는 법이 없이 명징한 아티큘레이션을 유지했다. 질주하는 구간에서 음을 낚아채는 듯 탄력적인 리듬감으로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라자르 베르만의 왼손과 소프로니츠키의 오른손으로 치는 아트 테이텀. 이 젊은 예술가는 그렇게 또 하나의 벽을 허물었다.
그의 피아노가 선사하는 시공간의 전이는 이토록 경이로워서, 나는 두 시간 동안 슈베르트와 함께 알프스의 서늘한 계곡을 건너 스크랴빈의 휘몰아치는 흑해를 지나 저멀리 우주의 광휘까지 목도하고 돌아왔다. 혼이 빠져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습한 바람이 부는 홍콩의 밤바다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을 붙들었던 예술론과 함께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생의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고매한 한줄의 문장이나,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한 눈부신 풍광이 그러하듯 그의 음악은 지나온 오늘을 기꺼이 찬미하게 하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단순히 듣기 좋았다는 감상을 넘어, 삶의 궤도를 수정하려는 의지와 높은 마음을 품게 하는 것. 임윤찬의 피아노는 이렇게 예술이 삶을 구한다는 쓸모를 기어이 믿게 한다. 다시금 영혼의 허기가 채워진 충만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