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일기를 거의 매일 써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어떤 특별한 날, 잊지 못할 순간들을 남들보다 조금은 더 생생히 기억하는 편인 것 같다.
2004년의 내 일기장은 매 페이지가 글씨로 빼곡하게 차있었다. 태국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들은 날, 짐 싸고 한국을 떠나던 날, 태국에 처음 도착한 날, 새 학교에 입학한 날 등등.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 남는 날은 내가 국제학교에 입학시험을 보러 간 날이다. 그날 내 일기에는 13살 소녀였던 내가 '불효자가 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고민이 쓰여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은 다 한다는 사교육도 받으면서 공부한 학생이었다. 특출 나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편이라 성적도 학업성취도도 평균에서 조금 웃돌았다. 나름 영어 과외 및 학원도 다녀 봤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큰 부담감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국제학교는 달랐다.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영어를 구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모든 과목을 수학해야 한다는 큰 퀘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학시험을 보러 가게 된 학교는 태국에서 7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커리큘럼의 명문 사립 국제학교이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학교 캠퍼스 사진을 보니 외국영화나 드라마에 나올만한 비주얼이었고, 전 세계의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꿈같은 곳이었다. 학교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다니고 싶어졌다.
그런데 입학 관련 정보를 찾아보다가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입학시험 비용과 학비를 알아버린 것. 입학시험을 보는 것만으로도 몇 십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중학생인 내가 체감하기엔 정말 너무한 금액이었다)
금액을 알게 되고 나니 입학시험을 보는 내내 부담스러웠다. 머릿속에서 자꾸 불합격하면 이 돈이 너무 아까울 거라는 걱정이었다. 그날 본 영어, 수학, 구술면접은 잘 봤는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단지, 집에 와서 저녁에 쓴 일기에 '전형료 아깝지 않게 합격해야 할 텐데..'라고 곱씹는 일기를 썼던 것만 기억이 난다. 나 같은 평범한 토종 한국인이 과연 국제학교에 합격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때 영어공부 좀 더 해놓을 걸 하고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