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글바람 난 직장인이자 엄마 사람 이야기
"엄마는 왜 맨날 글만 써."
키보드를 이리저리 눌러대는 아들내미 덕분에 하얀 바탕은 엉망이 되었다. 화도 낼 법도 한데 그런 아들이 귀여워 책상에 앉힌다.
"OO이도 써볼래?"
"응!"
수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아들은 키보드 위에서 이리저리 장난을 친다.
"깔깔깔"
뭐가 그리 좋을까?
"엄마 글 망쳐서 좋아?"
'응."
수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한 동안 장난을 치더니 재미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더 하지."
"엄마 글 써. 방해 안 할게."
아들은 이내 엄마를 의자에 다시 앉힌다. 방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지만 다시 하얀 바탕과 시름하는 나로 돌아온다.
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어떤 내용이 좋을까?
방황하는 손은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내 자리를 털고 산책을 나간다.
자연을 보고 오면 글이 써지기도 하니까.
글과 바람이 난 지 2년이 넘었다.
기억은 있지만 기록이 없는 삶이었다.
단편적인 기억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때의 감정과 느낌을 남겨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분명 40년 넘게 살아왔는데.
나는 대체 무얼 하면 산 걸까? 기록이 없으니 증명할 길이 없다.
이력서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경력만이 유일한 증거이다.
때론 엄마로, 때론 가장으로 살았다. 결혼을 했어도 엄마는 나에게 독립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소녀 가장이다.
그 무게가 힘들고 지칠 때 돌파구가 없었다. 쾌락에 의존하며 나를 소비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글을 만났다. 점점 더 좋아지더니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
글과 바람이 났다. 그것도 단단히.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큰일이다.
머리 감을 때, 손을 씻을 때, 떠오른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휴대폰을 들어 메모한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낸다.
오늘 또 글과 무슨 데이트를 하면 좋을까?
행복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