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평민의 반란(7) 호민관 제도의 탄생

by leo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메네니우스는 연설을 마칠 무렵 평민에게 간청했다. 로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물론 거기서 나온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을 일일이 나열했다. 그리고 양측의 비극을 비통하게 여겼다.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통곡했다. 그리고 시간 낭비 없이 서둘러 로마에 돌아가자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평민은 회의를 마치려고 했다. 그들의 안전과 관련된 내용을 전혀 정리하지 않고 사절단에게 모든 걸 맡기려고 했다.


그때 브루투스가 다시 앞으로 나와 연설했다.


“원로원이 내놓은 제안은 일반적으로는 평민에게 매우 유리합니다. 이런 양보에 대해 평민은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게 마땅합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언젠가 독재적인 귀족이 나타나 오늘 평민의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 일을 벌일까 두렵습니다.


귀족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평민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럴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쁜 짓을 할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한 그들에게서 나쁜 의지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평민이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들은 더 이상 나쁜 짓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메네니우스는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브루투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민이 해마다 일정한 수의 행정관을 뽑을 권리를 주십시오. 남을 해칠 권한이 아니라 평민을 도와줄 권한을 가진 행정관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권리를 빼앗지 못하게 보장해 주십시오. 당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혜택에 이것을 더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협상이 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알게 해 주십시오.”


평민은 브루투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 사절단에게 브루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요청했다.


사절단은 회의에서 잠시 물러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곧바로 돌아왔다. 메네니우스가 입을 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한 도시에 두 개의 국가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안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사절단 일부가 로마에 가서 이 문제를 알리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원로원으로부터 협상을 타결 지을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우리가 결정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로원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다른 사절단과 함께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발레리우스가 나머지 사절단을 데리고 원로원에 갈 것입니다.”


사절단과 평민은 그의 말대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 내용을 원로원에 알리기로 한 사절단원은 말을 타고 로마로 서둘러 달려갔다. 집정관이 이 문제를 원로원 의원들에게 제안하고 발레리우스가 그 내용을 설명했다. 처음부터 협상에 반대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드러내놓고 이 문제에도 반대했다.


“오! 신이여! 제가 하는 말에 증인이 돼 주소서. 그들은 앞으로 로마에 악으로 자라날 씨를 뿌리려고 합니다.”


클라우디우스의 말은 원로원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서둘러 내란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원로원 법안이 통과됐다. 평민에게 원하는 대로 안전장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발레리우스 등은 다음날 진지로 돌아가 원로원의 결정을 통고했다. 메네니우스는 이렇게 조언했다.


“사람을 보내 원로원이 주는 약속을 받아오시오.”


브루투스가 마르쿠스 데키우스, 스푸리우스 이킬리우스와 함께 로마에 갔다. 사절단 중 절반이 그들과 함께 갔다. 나머지는 진지에 남아서 그들의 행정관을 창설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다음날 로마에 갔던 브루투스 일행은 로마 사제인 페티알레스를 평화의 중재자로 삼아 원로원과 합의했다. 평민은 전체를 쿠리아라고 부르는 구역별로 나눈 뒤 각각 해마다 뽑을 첫 행정관을 선출했다.


브루투스, 가이우스 시키니우스 벨루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루가였다. 다섯 명은 호민관 권한을 부여받은 첫 인물들이었다. 이때는 12월 이데스(매달 가운데 날짜) 나흘 전, 즉 12월 10일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사절단은 파견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브루투스는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요구했다.


“호민관에게 신성불가침의 자격을 줘야 합니다. 법과 맹세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합니다.”


제안은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브루투스와 동료들은 이와 관련된 법을 만들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어느 누구도 평민의 호민관에게 뜻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도 호민관을 채찍질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호민관을 채찍질하라고 시켜서도 안 된다.어느 누구도 호민관을 죽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살인을 교사해서도 안 된다. 만약 누가 이런 짓을 한다면 그는 유죄로 간주되며, 그의 재산은 평민의 신 케레스에게 바친다. 호민관을 해친 사람을 죽인 사람은 살인에 대해 무죄다.’


미래에 어느 누구도 이 법을 폐기할 수 없도록, 그리고 영원히 바뀔 수 없도록 모른 로마인은 신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경건하게 ‘영원히 법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 맹세에 덧붙여 이렇게 기도하게 했다.


“로마의 신이시여! 이 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어기는 사람은 최악의 신성모독을 저지른 것으로 생각하시고 신의 분노를 쏟아내소서.”


이후 로마인 사이에서는 평민의 호민관을 신성불가침한 자리로 여기는 관습이 생겼다. 이 관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평민은 이런 법을 투표로 통과시킨 뒤 농성을 벌였던 신성한 언덕 정상에 제단을 건립했다. 이 제단에 유피테르 테리토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당시 느꼈던 공포를 표현한 이름이었다. 평민은 유피테르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례를 거행하고 그들을 받아준 신성한 언덕을 유피테르 신에게 봉헌한 뒤 사절단과 함께 로마로 돌아갔다.


평민은 로마에서도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귀족에게 새로운 행정관 제도를 확정짓는 투표를 실시하도록 했다. 평민은 이런 절차를 거친 뒤 또 다른 요구안도 내놓았다. 호민관들이 필요한 일을 할 때마다 도움을 줄 보조인력 두 명을 매년 임명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공장소를 관리하고, 시장에 물건이 풍족한지를 조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원로원은 이 요구도 받아들였다. 평민은 호민관의 보조인이자 동료 역할을 할 사람들을 곧바로 선출했다. 이들에게는 라틴어로 애딜리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성한 장소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지금 그들의 역할은 더 이상 다른 행정관의 보조에 머물지 않는다. 매우 중요한 일이 그들에게 맡겨졌다. 그리스에서는 ‘시장 감독관’을 뜻하는 아고라노모이를 닮은 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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