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 게나니우스 마케리누스와 푸블리우스 미누키우스가 집정관으로 취임했다. 로마는 곡물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1년 전의 평민 반란이 원인이었다. 평민이 이탈한 것은 씨를 뿌릴 시기인 춘분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농부들은 반란이 일어났을 때 농장을 버리고 떠났다. 이들은 두 편으로 갈라졌다. 일부는 평민에 합류했고, 일부는 귀족 편은 들었다. 그때부터 로마가 다시 재정비되고 통합될 때까지 양측은 서로 불편하게 지냈다. 화해는 동지 직전에야 이뤄졌다.
반란은 곡식을 재배할 시기에 일어났다. 그래서 아무도 땅을 돌보지 않았다. 그 사이 긴 시간이 지났다. 농부들이 돌아왔을 때에도 다시 땅을 경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노예들은 달아나버렸고 가축들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일부 농부만 이듬해에 씨 또는 식량으로 사용할 곡식을 조금 확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로원은 에트루리아와 캄파니아, 그리고 폼프티누스 평원 지역에 사절단을 보내 곡식을 사오게 했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와 루키우스 게나니우스는 시칠리에 갔다. 발레리우스는 공화정의 문을 연 푸블리콜라의 아들이었고, 게나니우스는 집정관의 동생이었다.
당시 여러 도시에서는 독재자들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데이노메네스의 아들로서 겔라와 시라쿠사의 독재자인 겔론이었다. 시칠리에 간 사절단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섬 주변을 헤매야 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독재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겨울을 보낸 뒤 엄청난 양의 식량을 싣고 여름에야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폼프티누스 평원에 간 사절단은 볼스키 족으로부터 첩자로 몰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로마에서 망명을 간 사람들이 그들을 고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큰 어려움을 겪은 뒤 현지 친구들의 열성적인 노력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져 로마로 돌아왔다. 돈은 날렸고, 아무 것도 가져오지 못한 상태였다.
쿠마이에 간 사절단도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로마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한 뒤 타르퀴니우스와 함께 달아난 로마 망명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독재자에게 로마 사절단을 죽여야 한다며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독재자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망명자들은 다시 이렇게 요청했다.
“로마가 부당하게 빼앗아간 우리 재산을 돌려줄 때까지 이들을 인질로 잡아놓도록 해 주십시오. 왕께서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판단해주시는 게 마땅합니다.”
당시 쿠마이의 독재자는 아리스토크라테스의 아들인 아리스토데무스였다. 그는 시민들에게서 ‘여자 같다’는 뜻인 말라쿠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떤 경우에는 본명보다 별명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가 어릴 때 여자 같았고 스스로 여자로 취급해달라고 했다는 데에서 이런 별명을 얻었다. 그의 성격이 아주 부드럽고 화를 잘 내지 않기 때문에 이런 별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타르퀴니우스를 따라나선 로마 망명자들이 아리스토데무스에게 그들의 주장을 심판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가 쿠마이의 독재자로 14년째 집권하던 때였다. 로마 사절단은 망명자들의 주장에 반대했다.
“우리는 당신들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를 가리려고 여기 온 게 아니오. 원로원은 우리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소.”
사절단의 주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독재자는 망명자들의 간청과 호소 때문에 판정을 가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래서 사절단은 할 수 없이 시간을 달라고 했다.
사절단은 꼭 재판에 출두하겠다면서 일정한 돈을 보증금으로 맡겼다. 이 때문에 소송은 잠시 연기됐고, 아무도 사절단을 감시하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사절단은 로마로 달아났다. 독재자는 그들의 하인, 짐을 싣고 온 가축, 그리고 곡물을 사기 위해 갖고 온 돈을 압수했다.
에트루리아의 여러 도시에 갔던 사절단은 상당한 분량의 기장과 밀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곡식을 배에 싣고 로마로 운반했다. 이 곡식으로 로마인은 한동안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었다.
머지않아 곡식이 바닥나는 바람에 로마인은 다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적지 않은 로마인이 식량 부족과 익숙하지 않은 음식 탓에 육체적으로 약해졌다.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아 완전히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전쟁에서 로마에 패했던 볼스키 족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여러 도시에 사절을 보내 로마에 맞서 전쟁을 일으키자고 유혹했다.
“로마는 전쟁과 기근 탓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금 공격하면 전혀 저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로마가 적의 속국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놀라운 형태로 권능을 보여주었다. 끔찍한 역병이 볼스키 족의 여러 도시에 만연했다. 그리스나 야만족 어느 도시에서도 일어난 적이 없는 엄청난 질병이었다. 역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몸이 약하건 강하건 가리지 않았다.
볼스키 족의 대표적인 도시인 벨리트라이를 보면 이 재앙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 도시는 매우 컸고 인구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역병 때문에 전체 인구의 10%가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도 병에 걸려 고통을 겪었다. 결국 질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 그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리면서 도시를 로마에 그냥 넘기겠다고 말했다.
“우리 도시에 로마의 식민지단을 보내주십시오.”
로마는 볼스키 족의 참변을 알고 연민을 느끼게 됐다. 더 이상 그들에게 적개심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려다가 신에게 벌을 받고 있는 것이오. 이제 그 벌을 충분히 받은 것 같군요.”
로마는 벨리트라이에 충분한 규모의 식민지단을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로마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주둔군만 확보한다면 벨리트라이 지역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사람들의 계획을 억제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상당수 주민을 그곳에 보낼 경우 로마가 겪고 있는 식량 부족난도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로마에서는 다시 반란의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귀족에 대한 평민의 반감은 불붙기 시작했으며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많은 평민이 귀족에게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귀족은 곡물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대비를 하지도 못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한 대비책을 갖추지도 못했다.”
“귀족은 신성한 언덕에서 일어난 반란 때문에 평민을 미워하고 있기 때문에 평민에게 큰 피해를 입히려고 일부러 식량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원로원은 투표를 통해 식민지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식민지단은 서둘러 파견됐다. 원로원은 세 명을 지도자로 지명했다. 평민은 처음에는 땅이 주어지는 줄 알고 기뻐했다.
“이제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름진 땅에서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벨리트라이에서 일어난 역병을 알게 된 평민들은 분노했다.
“벨리트라이에 역병이 일어나서 도시를 완전히 휩쓸었다고 하는군. 많은 시민이 죽었다는 거야. 우리도 가면 똑같은 신세가 될 거야.”
결국 식민지단에 참가하려고 신청한 사람의 수는 매우 적었다. 원로원이 결정한 것에 훨씬 못 미쳤다. 평민은 엉터리 정보를 제공했다며 원로원을 비난했다.
식민지단을 보내야 했던 원로원은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추첨을 통해 식민지단을 구성하겠소. 당첨된 사람이 가지 않으려 한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리겠소.”
이렇게 해서 벨리트라이 식민지단은 겨우 구성될 수 있었다. 허울만 그럴 듯하게 자율이었을 뿐 실제로는 강제였다. 며칠 뒤에는 다른 식민지단이 라틴족의 주요 도시인 노르바에 파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