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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서(?) 산 런던 브리지

by leo


“런던 브리지를 팔도록 합시다.”


1967년이었다. 런던의 다리 유지, 보수, 관리 업무를 맡는 다리관리위원회 회의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이 나왔다. 런던시의회 의원이면서 위원회 위원인 이반 루킨이 내놓은 제안이었다.


런던 브리지는 처음에는 1세기에 나무로 지어졌고, 12세기에 돌로 새로 건설됐다가 1832년에 다시 돌로 재건된 유서 깊은 다리였다. 다리관리위원회가 회의를 할 무렵의 런던 브리지는 새로 건설된 지 100년을 넘어 낡을 대로 낡아 대대적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다. 일부에서는 보수하기보다는 새로 짓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다리관리위원회가 해법을 못 찾아 헤매고 있을 때 루킨이 다리 매각이라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밝힌 것이었다. 다리관리위원회는 그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했다. 이렇게 낡은 다리를 누가 사겠느냐는 게 대다수 위원들의 생각이었다. 일부는 속으로 ‘저 사람 미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밑져야 본전인 장사이지요.”


다리관리위원회는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루킨의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했다. 그의 말마따나 손해볼 것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영국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에 런던 브리지를 판다는 제안문을 보냈다. 구매 의향서 제출 시한은 1968년 3월 28일로 정했다.


루킨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런던 브리지 매각 홍보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뉴욕에 있는 영미상공회의소에서 기자 50명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런던 브리지는 1832년에 지어진 오래된 다리입니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처럼 위에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설이 넘치는 다리도 아닙니다. 도대체 런던 브리지에 특별한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루킨은 느긋하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런던 브리지는 단순한 다리가 아닙니다. 지금 다리는 1800년대에 세워졌지만, 원래 역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세기 무렵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든 다리이지요.”


당초 우려대로 아무도 구매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루킨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재미있는 제안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미국에서 다리관리위원회에 팩스로 서류 한 장이 들어왔다.


‘런던 브리지를 살 의향이 있습니다. 구매 가격, 조건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의향서를 보낸 사람은 ‘맥컬로 오일’의 회장인 로버트 매컬로였다. 맥컬로 오일은 석유시추 엔진과 전동톱을 개발한 회사였다.


다리관리위원회는 지체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양측의 협상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리관리위원회와 맥컬로는 4월 18일 매매 계약서에 서명했다. 가격은 246만 달러였다.


맥컬로는 배로 수송하기 위해 다리를 분해했다. 각 부품 하나하나에 다 번호를 매겼다. 분해한 다리는 배에 실려 파나마 운하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갔다. 그리고 트럭에 실려 롱비치를 거쳐 애리조나주 레이크 하바수 시티로 옮겨졌다.


레이크 하바수 시티는 맥컬로가 만든 도시였다. 처음에는 미공군기지가 있던 황무지였지만, 맥컬로가 땅을 사들여 개간하고 개발해 도시로 만든 곳이었다.


맥컬로는 런던 브리지를 론 콜로라도 강의 브리지워터 운하에 설치했다. 다리 재설치 작업은 1971년 10월 10일 끝났다. 런던에서 분해해 온 다리에서 나온 모든 재료가 애리조나에 설치할 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석재는 사용되지 않고 버려졌다. 맥컬로는 돌들을 한 채석장에 버렸다. 돌들은 2003년 채석장이 파산한 뒤에는 ‘런던 브리지의 돌’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온라인 경매에 오르기도 했다.


런던 브리지가 미국에 건너간 이후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맥컬로는 런던 브리지를 타워 브리지로 잘못 알고 샀다.”


타워 브리지는 런던 브리지 위쪽에 있는 다리다. 런던 타워 앞에 있기 때문에 타워 브리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런던에 있는 여러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타워 브리지를 런던 브리지로 오해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실제 타워 브리지에서 사진을 찍어놓고 런던 브리지라고 설명을 달아놓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맥컬로가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낡아 폐기 직전인 다리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줬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맥컬로는 이에 대해 ‘맞아, 아니다’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루킨이 이때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는 영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맥컬로 씨는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확하게 런던 브리지를 산 것입니다.”


맥컬로는 다리 이전 작업을 마치고 6년 후인 197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런던 브리지 의혹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일부에서는 ‘그가 속아서 샀다’라는 소문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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