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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홀과 빅벤

by leo


1834년 10월 16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며칠 동안이나 불길이 잡히지 않아 오랫동안 영국 정부 청사 및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궁전은 거의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겨우 살아남은 부분은 1097~1099년에 지은 웨스트민스터 홀뿐이었다.


영국 정부와 의회는 국왕의 지시에 따라 새 궁전을 짓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1840년에 시작됐다. 의회는 새 궁전을 지으면서 궁전 앞에 타워를 하나 세우고 시계를 설치하기로 했다. 타워 설계, 건축 그리고 시계 외형 제작은 새 궁전 실내장식 작업을 맡은 건축가 오거스투스 퓨진에게 넘겼다.


또 시계를 움직이는 기계와 시간을 알리는 종 제작은 왕실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조지 에어리에게 맡겼다. 에어리는 시계 제작 시방서를 공개하면서 엄격한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시간을 알리는 시계 종의 첫 타종은 하루에 1초 차이 이내에서 정확해야 한다. 매일 두 차례 기록을 적어서 그리니치 천문대에 보내 보관하도록 해야 한다.’


당시 대부분의 시계 제작공은 이 시방서대로 시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의회에 시방서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 만들 타워에 내걸 시계 바늘은 엄청나게 큽니다. 매일 거센 바람 등 거친 날씨에 노출됩니다. 이런 시계가 하루에 1초 이내에 정확하도록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시계제작공의 하소연에도 에어리의 완고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시방서 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이 때문에 아무도 시계를 만들려고 나서지 않아 시계 제작 작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난처해진 의회는 좀 온건한 에드먼드 베켓 데니슨에게 에어리와 함께 일하도록 했다. 데니슨은 시계, 자물쇠, 종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사업이 시작된 지 11년이 지난 1851년이었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데니슨은 마침내 에어리가 요구하는 시방서 조건에 들어맞는 시계 설계도를 만들어냈다. 시간을 알리는 종 무게만 무려 14t이나 되는 대형 시계였다. 에어리는 아주 만족스러워 하며 데니스의 시계 설계도를 승인해 주었다.


데니슨은 시계 제조회사인 메서스 E. J. 덴트 사에 시계를 만들라고 했다. 시계가 완성된 것은 제작을 주문하고 3년 뒤인 1854년이었다. 그때까지도 시계를 설치할 타워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첫 문제는 종 제작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가장 큰 시계 종은 요크 민스터에 있는 그레이트 피터였는데 무게는 겨우(?) 10.75t이었다. 영국 주종사(종을 주조하는 사람)들은 14t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새 시계 종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데니슨은 종의 무게뿐만 아니라 종청동(종 제작에 사용하는 청동) 제조법도 엄격히 따졌다. 주종사들은 이런 조건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거나 1856년 8월 6일 데니스가 원하는 대로 시계 종이 제작됐다. 무게는 14t을 넘어 무려 16t에 이르렀다. 종을 만든 회사는 존 워너&선스였다. 그런데 시험 타종을 하던 도중 종에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종 제조회사의 기술력이 부족했던 게 원인이었다.


고민하던 데니슨은 당시 영국 최고의 종 전문회사로 평가받던 화이트채플 주조공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화이트채플의 사장 조지 미어스는 당장의 돈보다는 평생 이름을 날릴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새 종을 만들 청동을 얻기 위해 깨진 종을 분해하는 데에만 꼬박 1주일이 걸렸다. 종이 너무 커서 녹이는 데에는 대형화로 세 개나 필요했다. 게다가 주종하기 하루 전날 24시간 동안 거푸집을 달궈야 했고, 거푸집에 녹은 청동을 부어 식히고 굳히는 데에만 20일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새 종이 완성된 것은 1858년 4월 10일이었다. 미어스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살펴본 결과 새 종에는 특별한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 완성된 종은 다행히 시험 타종에서도 균열을 일으키지 않았다.


두 번째 난관은 운송이었다. 새로 만든 초대형 종을 웨스트민스터 궁전으로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데니슨은 말 열여섯 마리가 끄는 초대형 수레를 만들어 종을 실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종 주조장에서 의회로 이어지는 도로는 완전 차단했다.


종을 실은 수레는 런던 브리지를 건너 버로 거리를 따라 간 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도착했다. 종이 런던 시내를 행진하는 사이 거리에는 온갖 축하 꽃 장식이 내걸렸다. 많은 시민이 몰려나와 박수를 치며 새 종을 축하했다.


새 종은 마침내 1859년 5월 31일 처음 타종을 했다. 런던 시내에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국 의회는 새로 만든 시계에 어울리는 이름을 만들기 위해 특별 회기를 소집했다. 의원들은 여러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큰 덩치 때문에 ‘빅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벤자민 홀 경이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시계와 종을 설치할 새 타워 건설을 감독한 사람이었다. 그가 연설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 앉자 한 의원이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냥 시계를 빅벤이라고 부르면 어때요?”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후 빅벤은 시계의 별명이 돼 버렸다. 이 이야기는 100% 정확한 내용은 아니지만 빅벤이라는 이름이 생긴 연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스토리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앨런 필립스라는 작가가 쓴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필립스에 따르면 빅벤이라는 이름을 제공한 사람은 권투선수 벤자민 카운트였다. 그의 몸무게는 17스톤(영국의 옛 무게 단위, 1스톤은 6.35㎏, 17스톤은 108㎏)이었다. 당시 권투선수 중에서는 덩치가 가장 커서 그는 빅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필립스는 ‘새 시계를 빅벤으로 부르자고 한 의원은 아마 카운트의 별명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를 증명할 서류 기록은 없다’고 적었다.


의회가 이름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사이 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빅벤을 설치하고 두 달이 지난 9월 무렵 종에 다시 균열이 생긴 것이었다. 미어스가 종을 만들면서 제안했던 무게보다 두 배나 무거운 타종기를 달아 사용한 게 이유였다.


의회는 안전 문제를 고려해 이후 3년 동안 종 타종을 중단했다. 그 동안에는 다른 작은 종을 두들겨 시간을 알렸다. 원인을 조사한 의회는 문제를 일으킨 큰 타종기를 철거했다. 대신 조금 더 작은 타종기를 설치했다. 균열이 생긴 부분에서 금속을 일부 긁어낸 뒤 타종기의 방향을 종전보다 8분의 1 정도 돌려 달았다. 빅벤에는 이때 생긴 균열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서 종소리는 완벽하게 맑지 않고 약간 깨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더 아름답고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시계만 빅벤으로 불렸다. 시계탑 이름은 공식적으로 클록 타워였다. 이름 그대로 ‘시계탑’이었다. 나중에는 세인트 스테판스 타워로 바뀌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 채 시계탑까지 그냥 빅벤이라고 불렀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2012년 3월 22일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하원 회의가 열렸다. 토비아스 엘우드 의원이 단상에 올라 이색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모든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원 의원 40명이 공동 서명한 그의 제안은 이런 것이었다.


‘하원은 엘리자베스 여왕 전하께서 평생 조국에 바친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다가올 여왕 전하 즉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축하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역대 영국을 통치한 군주 41명 중에서 60년 동안 재위한 국왕은 엘리자베스 여왕 전하와 옛 빅토리아 여왕 전하뿐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웨스트민스터 남쪽에 있는 타워는 원래 킹스 타워로 불렸습니다. 1860년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새로 지어졌을 때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빅토리아 타워로 개명했습니다. 이제 즉위 60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여왕 전하의 위업을 기념하는 뜻에서 빅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자는 안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영국 상하원은 그해 6월 26일에 열린 합동회의에서 엘우드 의원의 제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보수당, 노동당, 자유당 의원 중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9월 12일 엘리자베스 타워로의 개명을 공식 선언했다. 이렇게 해서 빅벤의 공식 명칭은 엘리자베스 타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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