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초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킹스 컬리지와 곤빌&카이우스 컬리지 사이의 예쁘장한 건물인 세닛 하우스로 학생들이 네 명씩 줄을 서서 들어갔다. 이날 이곳에서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학생들은 차례로 세닛 하우스에 들어가 부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
세인트존스 컬리지를 졸업하는 커스버트 홀트하우스도 친구들과 함께 졸업장을 받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홀트하우스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2층 발코니에 이상한 물건이 하나 걸린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커다란 나무숟가락이었다. 홀트하우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같이 올라가던 친구들은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웃지 마!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웃으면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웃지 마, 분명히 말했어.”
홀트하우스는 친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화난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친구들은 웃지 않으려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여전히 킥킥거렸다. 2층으로 향하던 홀트하우스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친구들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의 옆에 그대로 섰다.
“야, 커스버트. 왜 그래? 안 올라가? 졸업장 안 받을 거야?”
“아! 정말 열 받네. 졸업장 포기하고 대학교 졸업하지 말까 보네.”
“참아라. 어쩌겠니?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겪어야 할 일 아니겠냐?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추억이 될 거야.”
홀트하우스는 한참이나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겼다. 킥킥거리던 친구들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홀트하우스와 여러 학생은 존슨 부총장 앞에 섰다. 부총장은 홀트하우스의 반대편 끝에 서 있던 졸업생부터 차례로 졸업장을 수여하고 악수를 나눴다. 홀트하우스 차례가 되자 학교 직원이 2층 발코니에 걸린 나무숟가락을 들고 가 부총장에게 건넸다. 부총장은 숟가락을 받아 홀트하우스 앞에 서더니 졸업장과 함께 숟가락을 홀트하우스에게 전달했다.
“홀트하우스 군. 사회에 나가거든 수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게. 어쨌거나 졸업을 축하하네.”
부총장으로부터 나무숟가락을 건네받은 홀트하우스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4년간 고생했던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다는 기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부총장에게 나무숟가락을 건넸던 직원은 다시 홀트하우스에게서 나무숟가락을 돌려받아 밖으로 나갔다. 홀트하우스는 부총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휑하니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홀트하우스는 이날 ‘나무숟가락 상(Wooden spoon award)’을 받았다. 이 상은 그해 케임브리지대학교 전체 졸업생 가운데 수학 졸업시험 3등급에서 점수가 가장 낮은 학생에게 주는 상이었다. 1등급과 2등급에서 최저 점수를 기록한 학생에게는 가끔 은 숟가락 상과 금 숟가락 상을 주기도 했다.
나무숟가락에는 그리스어로 ‘이 나무숟가락은 수학시험의 마지막 기념품이다. 항상 보면서 눈물을 쏟도록 하라’라고 적혀 있다. 나무숟가락 상은 홀트하우스가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나무숟가락은 지금은 홀트하우스의 모교인 세인트존스 컬리지에 보관돼 있다.
케임브리지의 나무 숟가락상은 없어졌지만 그 개념은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럭비다. 지금은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6개국 선수권)’이라고 불리는 럭비 대회 초창기에 케임브리지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들은 학교의 나무 숟가락상 개념을 빌어 와 럭비 대회 꼴찌 팀에게 나무 숟가락상을 시상했다. 이 상도 1909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