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얘들아, 어서 가자. 세파루트 씨 가족이 기다리겠다. 여보, 서둘러요.”
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추운 날씨였다. 런던 외곽지역에 사는 제임스 씨는 현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두꺼운 외투도 추위를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무슨 준비를 할 게 그리 많은지 30분 넘게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조그마한 회사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그는 이날 가족과 함께 인근에 사는 세파루트 씨 가족으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생선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월급이 그다지 많지 않은 제임스 씨 가족이 가격이 만만치 않은 생선을 맛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임스 씨 가족의 기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보, 다 됐어요. 많이 기다렸죠. 춥죠. 어서 가요.”
제임스 씨는 두 딸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섰다. 아내도 많이 추운지 종종걸음을 치며 뒤에서 따라왔다. 세파루트 씨의 집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곳이었다.
“똑똑….”
제임스 씨는 세파루트 씨 집의 현관을 두들겼다. 잠시 후 안에서 철컥 하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오, 제임스 씨. 어서 오세요.”
“세파루트 씨. 우리가 조금 늦었죠. 아내와 딸들이 준비를 하는 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지….”
“하하. 여자들이란 다 그렇죠. 어서 여기로 들어와 앉으세요. 여보, 제임스 씨 가족이 오셨어.”
세파루트 씨는 제임스 씨 가족을 부엌의 식탁으로 안내했다. 식탁에는 이미 대부분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 덕분에 맛있는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생선요리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여보. 제임스 씨가 시장하시겠어. 어서 생선요리를 가져오세요.”
“네, 지금 가지고 가요.”
세파루트 부인이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 접시를 하나 들고 왔다. 제임스 씨와 아내, 딸들이 그렇게 기대하던 생선요리였다. 색다른 냄새가 접시에서 퍼져 나왔다. 오래 전에 식당에서 맛보았던 생선구이 냄새와는 전혀 다른 냄새였다. 세파루트 부인은 접시를 식탁 한가운데 놓았다. 접시에는 노란 색 음식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생선의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생선요리라고 하더니 아니었나?’
제임스 씨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파루트 씨, 생선요리는 어디에 있나요?”
“오, 생선! 여기에 있잖아요.”
“어디에…. 안 보이는데요.”
“집사람이 맨 나중에 들고 온 접시에 담긴 게 바로 생선이랍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보는 생선요리라서 못 알아보시는 겁니다. 저건 생선구이가 아니라 생선튀김이거든요.”
“생선튀김이라구요? 도대체 그게 뭔가요?”
제임스 씨는 생선튀김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도 그런 요리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생선을 구워먹거나 아니면 삶아서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튀김이라니, 그게 도대체 뭐지?
“일단 한 번 드셔보세요. 그러고 나서 제가 설명을 드리죠. 뼈가 없으니 드시기 편할 거예요.”
세파루트 부인이 접시에서 생선튀김 한 조각씩을 제임스 씨와 제임스 부인, 그리고 두 딸의 접시에 나눠주었다. 제임스 씨는 머뭇거리며 나이프로 생선튀김을 잘랐다. 먹어도 괜찮은 것인지 싶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생선튀김 조각을 입에 넣었다.
“아! 생선에서 이런 맛이…. 여보, 얘들아. 어서 먹어봐. 정말 대단한 맛이야.”
제임스 씨의 말에 제임스 부인과 두 아이도 생선튀김 조각을 입에 넣었다. 제임스 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기가 막힌 맛이었다. 두 아이는 나이프로 생선튀김을 연거푸 잘라 입에 넣기 바빴다. 제임스 부인도 체면을 차리느라 서둘러 먹지는 못했지만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파루트 부부의 입에서는 미소가 돌았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유대인이랍니다. 조상들은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사셨죠. 저희 같은 유대인을 세파르디라고 해요. 조상들은 코르도바에 사실 때 생선을 튀겨 드셨대요. 코르도바는 더운 지역이어서 생선이 잘 상해 튀겨먹는 일이 많았다고 해요. 저 뿐만 아니고 영국에 사는 세파르디들은 생선을 튀겨서 많이 먹어요.”
“아, 생선튀김이 세파르디의 전통음식이었군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스페인에서 계속 사시지 않고 영국까지 오셨나요?”
“사연이 길지만 간단하게 설명 드리죠. 원래 이슬람이 스페인을 지배할 때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가 어울려 잘 지냈답니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라 콘비벤시아(공존)라고 불렀죠. 그런데 기독교가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을 통해 스페인을 회복하고 이슬람을 몰아낸 뒤에는 사정이 달라졌답니다. 기독교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유대교까지 박해를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그래서 많은 유대교도들이 스페인을 떠나 네덜란드, 터키 또는 신대륙을 건너갔어요. 일부는 영국으로 왔어요. 저희 조상들은 그 중 일부죠.”
제임스 씨는 세파루트 씨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했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먹어본 생선튀김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접시에 있는 생선튀김은 바닥을 드러냈다. 세파루트 부인은 생선튀김을 한 접시 더 가져왔다.
“제임스 씨, 생선튀김은 얼마든지 있으니 천천히 드세요. 허허.”
2.
1680년 겨울 런던 인근의 작은 마을. 살을 에는 듯한 맹추위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문을 열고 손가락만 내밀어도 손가락 끝이 잘려나갈 것 같은 엄청난 추위였다. 추운 날씨에 익숙한 노인들도 "이런 날씨는 처음이야"라며 집안에서 꼼짝을 하지 않기 일쑤였다.
다섯 아이의 엄마인 앨리스는 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볼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그녀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지금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몇 년 전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벨기에에서 런던으로 이사를 왔었다. 런던에 가면 일자리가 많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문은 그냥 소문일 뿐이었다. 남편은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날품팔이를 구하는 게 고작이었다. 온 가족이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겨울이면 날품팔이마저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남편은 동네 남자들과 함께 마을 인근 강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먹을거리를 마련하곤 했다.
오늘도 남편은 오후 늦게 물고기를 잡으러 강에 갔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를 튀겨 빵과 함께 아이들에게 저녁거리로 내놓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물고기를 가져와야 할 남편이 오지 않으니 저녁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올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앨리스는 걱정이 됐던 것이었다.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저 멀리서 남자 몇몇이 웅성거리며 돌아오는 게 보였다. 남편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강에 갔던 사람들이 분명했다. 잠시 뒤 그들의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들 중에 덩치가 큰 남편도 보였다. 앨리스는 남편에게 달려갔다.
“여보,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애들이 배가 고프다고 울고 난리인데….”
“미안해. 여보. 강에 얼음이 너무 두껍게 얼어 물고기를 잡기가 힘들었어. 오늘은 다들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
“어떡하지? 집에 먹을 거라곤 빵 몇 조각뿐인데. 애들이 그 걸로는 배를 채우기 힘들 텐데….”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온 고민에 빠졌다. 애들한테 저녁으로 뭘 줘야할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이들도 엄마의 고민을 아는지 배고프다고 보채기는커녕 구석에 앉아 엄마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던 앨리스는 부엌으로 갔다. 일단 빵이라도 애들에게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접시를 꺼내고 칼로 빵을 잘랐다. 그때 저 구석에서 자루가 하나 보였다.
‘맞아. 감자가 있었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앨리스는 감자라도 구워 빵과 함께 애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녀는 자루에서 감자를 여러 개 꺼냈다. 애들 하나당 감자를 하나씩은 먹여야 배고픔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들이 구운 감자를 먹을지 여부였다. 그녀가 감자 자루를 까먹고 있었던 것도 애들이 감자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빵과 감자는 도저히 어울리는 요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어떻게 요리해야 애들이 감자를 잘 먹을지를 생각했다.
‘감자를 얇게 잘라 마치 생선튀김처럼 튀겨주면 어떨까? 한 번 시도해볼까?’
앨리스는 애들이 먹든 안 먹든 어쨌건 감자를 튀겨보기로 했다. 애들이니까 새로운 요리를 주면 신기해서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순식간에 기름 냄새가 번졌다. 생선튀김과는 다른 냄새였다. 비린내는 사라지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무슨 요리를 하는 거예요?”
새로운 음식 냄새에 호기심이 발동한 애들이 부엌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엄마의 행주치마를 붙잡고 어서 말해달라는 듯 엄마를 올려다봤다. 이미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배고픔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새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증만이 가득 했다.
“식탁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갖다 줄게.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요리를 할 수가 없지 않니.”
“네. 엄마. 얘들아. 우리 식탁으로 가서 앉자.”
평소에 엄마를 잘 거들던 큰아들 조슈아가 맏이답게 동생들을 데리고 식탁으로 달려갔다. 동생들은 평소 믿음직스럽던 그의 말에 따라 식탁으로 따라갔다. 잠시 후 앨리스는 식탁에 빵을 가져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본 감자튀김 요리를 올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얘들아. 이 요리는 세계에서 처음 만든 거란다. 바로 감자튀김이라는 거지. 생선튀김하고는 맛이 많이 다를 거야. 그래도 맛이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어. 자 맛있게 먹자. 여보! 당신도 드세요.”
집에 돌아온 뒤 손발을 씻고 돌아온 남편은 식탁에 앉았다. 그도 처음 보는 음식이 신기해보였다. 물고기를 잡아오지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내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놓아 고맙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감자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큰 아이들은 포크로 찍어서, 어린 막내는 손가락으로 그냥 집어 먹었다.
“야, 여보. 맛이 보통이 아닌데, 새로운 맛이야. 도대체 이게 뭐야?”
“엄마, 정말 고소해요. 매일 밤마다 감자튀김을 해주세요.”
“맞아. 엄마가 최고야. 우리 엄마는 최고 요리사요.”
앨리스가 감자튀김을 만들어 남편과 애들에게 먹였다는 소문은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에 온 마을에 퍼졌다. 옆집 아줌마들이 순식간에 앨리스의 집에 몰려들었다. 도대체 감자튀김이 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애들 반응은 어땠는지를 물어보느라 서로 입이 바빴다. 앨리스의 입에는 미소가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감자튀김은 이렇게 해서 런던 가정으로 조금씩 퍼져나갔다.
3.
“아빠,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함께 묶어서 팔면 어떨까요?”
1860년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의 한 거리. 13세 소년 조셉 몰린은 방금 머리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아버지 몰린 씨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건의했다.
그는 감자튀김 가게를 시작한 아버지가 ‘장사가 안된다’며 어머니에게 고민하던 이야기를 어젯밤 우연히 엿들었다. 아버지는 '장사가 잘되면 학교에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는 것 아닌지 존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장사가 잘 될 수 있을까 밤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몰린 씨 가족은 종교 박해를 피해 동유럽에서 런던으로 피난 온 유대인이었다. 몰린 씨는 원래 카펫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카펫을 팔기는 쉽지 않았다. 부자들은 페르시아에서 직접 수입해온 카펫을 샀다. 중산층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카펫을 살 돈이 없었다. 카펫 판매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어렵게 됐다.
그는 아내와 함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집 지하실에서 감자를 튀겨 거리에서 팔기로 했다. 평소에는 카펫을 짜고 점심이나 저녁시간에 맞춰 감자를 튀겨 팔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자튀김 장사는 그의 생각처럼 그렇게 잘 되지 않았다. 잘 해야 하루에 서너 봉지를 파는 게 고작이었다. 이미 런던에는 감자튀김을 파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새벽 무렵,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린 몰린의 머리를 스쳤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한 데 묶어서 팔면 어떨까?’
그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아버지에게 그의 생각을 어서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해가 뜨자마자 그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생선튀김과 감자튀김 세트 판매를 권유했다. 어린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몰린 씨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팔아도 되겠구나!’
몰린 씨는 바로 근처 생선튀김 가게로 달려가 생선튀김을 사왔다. 그는 집에서 튀긴 감자를 함께 상자에 넣어 거리를 오가며 외치기 시작했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한꺼번에 드셔보세요.”
“하나만 드셔도 배가 가득 찰 거예요. 맛있는 피시 앤드 칩스(Fish & Chips)랍니다.”
몰린 씨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식사거리를 사러 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린 씨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피시 앤드 칩스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집에서 마련한 세트가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피시 앤드 칩스를 들고나가기 무섭게 다 팔려버렸다.
몰린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돈을 벌었다. 그리고 세인트 메릴-바우 교회 인근의 클리블랜드 스트리트에 ‘몰린스’라는 식당을 열고 피시 앤드 칩스를 팔기 시작했다. 어린 몰린은 당연히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피시 앤드 칩스 탄생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68년 ‘영국생선튀김업협회’는 몰린스가 피시 앤드 칩스의 원조임을 인정하는 기념패를 증정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클라우디아 로덴도 1997년에 쓴 <유대인 음식 백과사전>에서 이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