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과 블타바강 사이의 즐라타 거리에 칼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늙은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사랑스러운 아내를 잃고 아름다운 딸 한나와 단 둘이 살았다. 아내를 닮은 딸을 정말 아꼈기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온 정성을 다해 키웠다.
칼만은 돈을 많이 못 버는 가난한 노점상이었지만 프라하의 유대인 소녀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딸 덕분에 매일 즐겁고 행복했다. 저녁에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딸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흘러넘쳤다.
‘한나가 잘될 수만 있다면 나는 굶어 죽어도 여한이 없어.’
딸이 열여덟 살이 되자 칼만은 서둘러 결혼시키기로 하고 프라하 이곳저곳에서 수소문해 돈을 잘 버는 신랑감을 골랐다.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아시아, 아랍까지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고팔면서 국제무역을 하는 유대인 폴락이었다. 칼만은 고심 끝에 어렵게 찾아낸 훌륭한 신랑감을 한나에게 소개했다.
“폴락 씨는 나이가 조금 많기는 하지만 돈을 잘 벌고 아주 성실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해. 키가 크고 덩치도 좋은 데다 그만하면 얼굴도 잘생긴 편이지. 아직 결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 딸린 자식도 없어. 아무리 찾아봐도 네 신랑감으로 그 정도 되는 인물은 없더구나.”
사실 한나에게는 1년여 전부터 아버지 몰래 만나는 연인이 있었다. 블타바강에서 작은 배 한 척을 몰고 다니며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파는 어부 베르그만이었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란 데다 재산은커녕 집도 없어 배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청년이었다. 칼만은 전혀 몰랐지만 한나는 매일 밤마다 블타바 강변에서 베르그만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속삭였다.
한나에게는 당연히 폴락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며칠 동안이나 하도 간곡하게 권유한 탓에 그를 만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폴락은 한나의 미모에 반한 나머지 즐겁게 웃으면서 계속 말을 걸었지만, 베르그만 생각만 하던 한나의 귀에는 그의 말이 단 한마디도 들어가지 않았다. 한나가 폴락을 만나고 돌아온 다음날 칼만은 환하게 웃으며 딸의 손을 꼭 잡았다.
“폴락 씨는 네가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야. 너를 보내준다면 금화 100개를 주겠다면서 결혼을 서두르자고 재촉하는구나. 사실 내게는 금화 따위는 필요가 없어. 네가 부자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한나는 딸이 부잣집에 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아주 착하고 순종적인 그녀가 아버지에게 폴락과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가난한 어부 베르그만을 만나고 있으며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털어놓기도 곤란했다.
괴로워하던 한나는 그날 밤 평소처럼 아버지 몰래 블타바 강변으로 내려갔다. 사정을 모르는 베르그만은 여느 날처럼 배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연인을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한나가 나타나자 그는 벌떡 일어나 강둑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나!”
베르그만은 이전과는 달리 아주 침통하고 슬픈 안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안나의 두 손을 꼭 잡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안나는 눈물을 흘리며 며칠 동안 벌어졌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베르그만의 얼굴도 침통해졌다. 두 연인은 꼭 껴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마침 그때 아주 신나는 표정을 한 폴락이 두 손에 선물꾸러미를 잔뜩 들고 블타바 강변을 지나갔다.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안나를 만나 결혼 확답을 받으려고 그녀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는 강변의 작은 배에서 두 사람이 꼭 껴안은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폴락은 몰래 배 근처로 다가가 그들이 누군지 살펴보았다. 그는 의문의 주인공이 한나라는 걸 발견하고는 기절초풍할 것처럼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한나! 당신이에요?”
하늘이 안나와 베르그만을 돕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인지 칼만도 그때 강변으로 나왔다. 그는 며칠 뒤에는 한나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고 늦은 밤에 살그머니 딸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침대에서 다소곳이 자고 있어야 할 소중한 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최근 들어 딸이 밤마다 산책을 자주 나간다는 걸 기억하고는 걱정이 돼 찾으러 나왔던 것이었다. 그도 폴락처럼 딸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한나!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장사를 오래 했기 때문에 눈치가 빨랐던 폴락과 세상을 오래 살아 경험이 풍부했던 칼만은 한나와 베르그만이 배에 함께 있는 걸 발견하고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금세 알아챘다. 두 사람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나를 끌어내기 위해 배로 뛰어갔다.
“한나! 이리 나오너라.”
폴락과 칼만이 동시에 달려오는 걸 본 베르그만은 덜컥 겁이 났다. 지금 한나가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그는 저도 모르게 노를 집어 들어 강물에 담가 힘껏 저었다.
“삐걱~ 삐걱~!”
벌써 여러 해째 노를 저어 온 데다 힘이 철철 넘쳐나는 스무 살의 청년이었기 때문에 베르그만은 금세 배를 강변에서 떼어내 강 한가운데로 몰고 갈 수 있었다. 한나를 붙잡으려고 강변으로 내려갔던 폴락과 칼만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망연자실 배를 바라보기만 했다. 칼만의 입에서는 탄식 같기도 하고 분노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렀다.
“한나…. 네가 어떻게 나를….”
한나는 배 위에서 우두커니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그녀도 뜻하지 않게 아버지를 배신한 게 돼 버린 상황에 충격을 받은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배를 돌린다면 폴락과 결혼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앞으로 다시는 사랑하는 베르그만을 만날 수 없을 게 뻔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한나와 베르그만은 작은 배 위에서 두 손을 꼭 잡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두 사람은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늘이 정한 자연의 순리가 온전히 두 사람만을 위해서 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새벽이 됐고 곧 날이 밝을 모양이었다. 베르그만은 중요한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강변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번에는 강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사랑하는 한나! 우리가 달아날 곳은 없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칼만 씨와 폴락 씨는 우리를 찾아낼 거야. 용케 도망친다 하더라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먹고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한나는 베르그만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사랑하는 한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도록 하렴. 나는 네가 불행해지는 걸 원하지 않아. 다만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만 기억해 주면 좋겠어. 그럼 안녕!”
베르그만은 말을 마치자마자 돌연 강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강바닥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베르그만! 베르그만!”
한나는 뜻밖의 일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뱃머리를 붙잡고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렀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연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강변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강바닥으로 추락한 베르그만의 뒤를 따라 몸을 던졌다. 두 연인을 잃은 배는 혼자 삐걱거리며 잔잔한 블타바 강 아래로 천천히 흘러 내려갔다.
2.
칼만은 다음날부터 매일 배를 빌려 블타바 강에서 딸을 찾으러 다녔다. 살아 있기를 바랐지만, 만약 죽었다면 시신이라도 건지자는 게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이 지나도 딸의 시신은커녕 옷 조각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절망한 칼만은 수색을 포기하고 장사마저 때려치운 채 집안에 틀어박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간 여동생 시프라가 늙은 오빠를 불쌍히 여겨 함께 살며 돌보게 됐다.
시프라는 죽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는 오빠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시달렸다. 식음을 전폐한 오빠를 억지로 식탁에 데리고 가 밥을 먹여야 했고,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며 밖에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켰다. 칼만은 낮에 다니다 이웃을 만나면 부끄럽고 두려워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주로 밤에 나갔다.
“야옹!”
한나와 베르그만이 사라진 지 딱 1년 되던 날이었다. 칼만과 시프라는 여느 때처럼 자정 무렵 집에서 나와 나프르스코프바 거리를 지나 블타바 강변을 향해 걸었다. 난데없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나 애교를 떨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시프라는 반갑게 웃으며 무릎을 굽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야옹!”
검은 고양이는 다시 울음소리를 내더니 두 사람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같이 가자는 듯 한쪽 다리를 들어 흔들었다.
“고양이가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아니에요.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 같아요. 따라가 볼까요?”
골목길을 천천히 걸은 고양이가 도착한 곳은 한나의 연인 베르그만이 배를 정박하던 곳이었다. 빠른 물살을 늦추기 위해 카를교 바로 아래에 설치한 스타로미니에스츠키 댐 바로 앞이었다. 칼만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은 한나가 배를 타다 강물에 몸을 던져 사라진 곳인데….”
“네?”
깊은 밤이어서 카를교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희미한 조명만 흘렀다. 고양이가 길을 건너간 강변도 마찬가지였다. 가로등에서 흘러나오는 누런 불빛에 반사된 보도석은 흐릿한 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고양이는 강 아래로 내려갔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뒤처질까 천천히 걷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걸음을 멈춰 제대로 따라오는지 돌아보면서 기다리기도 했다. 강가에서는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물살에 흔들렸다. 고양이가 껑충 뛰어오른 배에는 작은 노 두 개가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고양이처럼 배에 올라탔다. 노를 젓는 뱃사공이 없는데도 배는 저절로 강 가운데로 흘러갔다.
배는 강 중간 정도 지점에서 스스로 멈췄다. 놀랍게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강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것이었다. 어두운 밤인 데다 한가운데 지점이니 강변에서는 눈을 씻고 쳐다봐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것 같았다. 갈라진 강바닥에 긴 계단이 나타났다. 고양이는 배에서 껑충 뛰어내리더니 아래로 내려갔다. 칼만과 시프라는 당혹스러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다 주저하며 그를 따라갔다.
계단 위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아래는 대낮처럼 밝았다. 끝에는 푸른 잔디가 깔린 너른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한쪽에는 아주 크고 화려한 궁전이 보였다. 그 앞에는 강이라기에는 너무 적고, 개울이라기에는 꽤 수량이 많은 하천이 흘렀다. 고양이는 궁전을 향해 달려갔다.
작은 강에는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물을 던지면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한 명은 젊은 남자, 다른 한 명은 젊은 여자였다. 갓 결혼한 부부 같은 인상을 주었다. 두 사람은 고양이와 두 사람을 보더니 배를 강변으로 몰고 나왔다.
“한나!”
놀랍게도 배에서 내린 사람은 한나와 그의 연인 베르그만이었다.
“아버지, 어서 오세요.”
칼만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나는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죄송해요. 아버지, 키워주신 은혜를 저버리고 강에 뛰어들어 정말 죄송해요.”
칼만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딸을 꼭 껴안았다.
“얘야,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라도 상관없어. 깨어나지만 않게 해 다오.”
“아버지, 꿈은 아니에요. 생시랍니다.”
방금 계단을 내려올 때만 해도 없던 식탁과 의자가 강변에 나타났다.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와 고소한 향기를 풍기는 먹음직스러운 과자가 놓였다.
“여기 앉으세요.”
베르그만은 쑥스럽게 웃으며 칼만에게 의자를 권했다. 칼만은 한나의 손을 잡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차는 아주 부드럽고 달콤했고, 과자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내가 온 이곳이 저승이니?”
한나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승은 아니에요.”
베르그만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장인 어르신이 한나를 데려가려고 달려올 때 우리는 배를 타고 강으로 달아났지요. 더 이상 갈 곳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차례로 강에 뛰어들었답니다. 한참 뒤 눈을 떠 보니 여기였습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딘가?”
“저희도 여기가 어딘지 모른답니다. 다만 천국은 아니고, 지옥은 더더욱 아니랍니다. 저희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곳이 블타바강 지하라는 사실뿐입니다. 저희가 왜 여기에 온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칼만은 정말 반가워 딸의 두 뺨을 어루만졌다.
“여기에서 살면서 왜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니?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우리는 강 위로 올라갈 수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이니?”
한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계단을 힐끔 쳐다보았다.
“바깥세상에서 사는 사람은 여기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어요. 방금 들어오신 계단을 이용하면 된답니다. 하지만 저희가 다가가면 계단은 사라져 버려요. 여러 번이나 나가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허사였지요. 여기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지만 단 둘만 지내니 외롭고 심심하기 짝이 없었어요. 아버지도 정말 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더니 가끔 강 위로 올라가 사람을 데려왔어요. 저희는 그 사람과 밤새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요. 어제는 고양이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온 거예요.”
칼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나와 베르그만이 사는 강 아래 세상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아주 평화롭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였다.
“나도 여기에서 살 수 있을까?”
한나는 살포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하세요. 그러다 지겨워지면 계단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서 지내다 오셔도 돼요. 이곳에는 부족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힘들게 사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칼만은 세상으로 나가면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거나 거리에서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며 장사를 해야 했다. 이곳은 달랐다. 딸이 있고 사위가 된 베르그만도 있었다. 딸의 말처럼 지겨워지면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살고 싶구나. 시프라, 너는 어떻게 할래?”
시프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사람들 속에서 섞여 살래요. 여기가 천국 같은 곳이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시프라는 한나와 베르그만의 후한 대접을 받으며 블타바강 아래에서 오랫동안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보면 한두 시간인 것 같았고, 다르게 보면 며칠인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강 아래 세상에서 지겨워질 때쯤 계단을 타고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끔 세상으로 나오는 오빠를 따라 다시 강 아래로 내려가서 며칠간 즐겁게 지내기도 했다.
시프라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칫 말실수를 했다간 오빠와 조카 부부가 사는 강 아래 세상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