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체코 최고의 시인이었던 얀 네루다의 제자 중에 야쿠브 아르베스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다. 아버지는 일단 밥벌이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아들에게 가업을 이어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아르베스에게는 기름이 절은 구석방에서 퀴퀴한 남의 발 냄새를 맡으면서 평생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스물두 살 청년으로 자란 아르베스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꿨다. 그는 아들의 소질을 알아본 어머니의 도움으로 독일어 학교에 다니게 됐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이 안 되려고 매일같이 공부에 매달린 아르베스는 머리가 복잡해지면 휴식 삼아 말라 스트라나와 흐라드차니의 골목길을 산책했다.
1862년 어느 봄날 저녁, 아르베스는 우연히 노비 스비에트의 골목길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우 라카’라는 집을 지나가다 2층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던 아름다운 소녀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그는 처음 본 소녀의 미모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건 아직 10대 후반이었던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부부의 외동딸 요세피나 라보초나였다. 노비 스비에트에서 가장 아름다워 이웃으로부터 나중에 큰돈을 받고 부잣집에 시집갈 수 있을 것이라며 부러움을 사던 소녀였다.
요세피나를 알게 된 아르베스는 다음날부터 매일 밤 노비 스비에트로 올라갔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근처의 프로코프 계곡에서 그녀를 만나 사랑의 단어를 속삭이며 뜨거운 육체의 밀회를 즐겼다.
사실 아르베스는 요세피나의 미모에 반하기는 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그도 넉넉하지 않은 구두수선공의 아들이었지만 요세피나의 집은 그야말로 ‘교회의 쥐만큼’ 가난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도 힘들 형편이었다.
이기적인 아르베스와 달리 요세피나는 사랑에 목숨을 걸 정도로 뜨거웠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불같은 열정은 더욱 달아올랐다. 사실상 일방적인 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르베스는 그녀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부담을 느꼈다. 그는 이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담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당신은 아프리카의 태양처럼 뜨겁지만 나는 북유럽 신화처럼 차갑기만 하답니다.’
요세피나의 부모는 장래의 사윗감이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혼을 잘하면 한밑천을 챙겨줄 수도 있는 딸을 가난뱅이에게 거저 보낸다는 생각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딸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부모는 요세피나에게 아르베스를 만나지 말라고 강요했다.
요세피나는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에 반대하는 부모에게 몹시 화가 났다. 그녀는 집에서 뛰쳐나가 인근의 고모 집으로 달아났다. 고모는 조카를 딱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망 온 조카에게 밥 한 그릇을 먹일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요세피나는 할 수 없이 다음날부터 장갑이나 옷을 짜서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 종일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르베스는 정말 가난했고 요세피나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알고 책임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풀어 오른 배를 보고 요세피나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이 결혼한 것은 요세피나가 출산하기 1주일 전이었다. 아쉽게도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부부는 죽을 때까지 딸 둘을 낳고 단란하게 잘 살았다.
아르베스는 학교를 졸업한 뒤 언론사에 들어가 일했다. 그는 매우 비판적이고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올곧은 언론인이었다. 절대 돈 때문에 양심을 팔거나 남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독일의 영향을 받은 여러 신문사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스승인 시인 얀 네루다를 존경했던 아르베스는 ‘로마네토’라는 특이한 형태의 단편소설 양식을 창안했다. 주로 동시대 프라하 서민의 삶을 담은 단편소설이었다. 그가 쓴 작품 중에는 노비 스비에트, 정확하게는 처가였던 우 라카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것도 있었다. 소설의 제목은 ‘자즈라츠나 마돈나’, 즉 ‘기적의 성모 마리아’였다. 남자를 사랑한 여인의 비극적 종말을 다룬 소설이었다.
‘한 여인이 바르톨로뮤 에스테반 무리요의 그림에 담긴 성모 마리아에 집착하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됐다. 그녀는 비소를 먹으면 성모 마리아처럼 예뻐진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돼 비소를 조금씩 사서 먹는다. 그 덕분에 나중에는 성모 마리아의 아름다운 미모를 얻게 됐다. 남자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여인에게 비소를 먹지 말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여인은 독에 굴복하고 만 것이었다.’
우 라카에 살던 요세피나의 부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을 팔았다. 이곳에는 나중에 흥미로운 예술가들이 들어가 살았다. 1960년대에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을 많이 쓴 유대인 작가 아르노슈트 루스티그와 스포츠 작가로 유명한 오타 바펠이 살았다.
1987년에는 사진작가 알렉산드르 파울이 건물을 매입해 들어가 살았다. 그의 아들은 집에 들끓는 세균과 곰팡이에 질린 나머지 건물을 부수고 호텔과 새 오두막을 지었다. 이때 문화유적 보호운동 단체들이 역사적 가치를 가진 오두막을 보존해야 한다며 파괴에 반대하고 나섰다. 건물주는 옛날 것과 똑같은 오두막을 한 채 짓겠다고 양보하는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노비 스비에트에 가면 노비 스비에트 거리와 체르닌스카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 전통적인 나무 오두막이 하나 보인다. 이곳이 바로 ‘가재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우 라카다. 지금은 작은 호텔과 카페로 이용된다. 우 라카 인근에는 브루스니체라는 개울이 있는데 옛날에는 거기에 가재가 많았다. 개울 근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집에는 가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밤에 거리에 차려놓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2층 창문에서 고개를 내미는 아름다운 소녀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를 부르는 남자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에는 아무 것도 못 본 척, 아무 것도 못 들은 척 하면서 그저 커피만 한 모금 마시는 게 상책이다.